아픈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부산엑스포 유치전’ 실패다. 유치를 위한 민관 합동의 ‘팀 코리아’는 분투했다. 결과적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119표)와 부산(29표)의 표 차이가 컸다. 2차 투표에서 역전을 노린다는 전략은 무산됐다. 민관이 각각의 영역에선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하지만 실패의 원인을 곱씹어봐야 다음 유치전에 도움이 된다. 그중 지나친 낙관적 전망은 경계했어야 했다고 본다. 사기진작을 위해 기대감이 큰 것은 좋지만 시쳇말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을지 모른다. 쉽게 넘기 어려운 외교관계의 냉혹한 현실의 벽이 높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더 현실적인 판세 분석이 있었다면 이렇게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6월 열린 ‘한·베트남 비즈니스포럼’에 참석한 재계 총수들. 최태원(앞줄 맨 왼쪽) 대한상의 회장, 이재용(앞줄 왼쪽 세 번째부터)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등 [뉴시스]

언급하기 껄끄러운 엑스포 유치 실패 이야기를 글머리에 올린 것은 ‘레드팀’의 중요성을 언급하기 위해서다. 레드팀은 한 마디로 조직 내에서 쓴소리를 하는 이들이다. 미군에서 블루팀(작전팀)에 대적해 가상의 적군 역할을 하는 레드팀(위장 아군)에서 유래됐다. 레드팀은 외부나 적의 관점에서 자기집단의 약점을 찾아내 지적한다. 불확실성에 대비한 객관적 예측도 병행한다. 이를 바탕으로 전략을 수립해 최고경영자가 그릇된 판단을 하지 않도록 돕는다. 빅테크기업에선 레드팀이 이미 활성화돼 있다. 실제 레드팀이 해커가 돼 다양한 공격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보안 취약성을 잡아내 예방 조치를 강화한다. AI가 화두가 된 요즘 AI 시스템 취약점을 찾아내 대응하는 AI레드팀을 운영하는 곳도 많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국내 재계 인사가 한창이다. 오너가 3·4세들이 경영 주축으로 부상하는 흐름이 눈에 띈다. 기존 1960~1970년대생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은 실제 그룹을 이끌고 있다. 최근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이규호 코오롱 부회장 등 1980년대생도 핵심축으로 떠올랐다. 롯데가 오너 3세인 신유열(1986년생) 롯데케미칼 상무의 경영승계 움직임도 주목받고 있다. 이 외의 금호, 세아 등 중견 그룹에서도 경영일선에 등장한 3, 4세대의 오너가가 많다.

레드팀은 외부의 관점에서 자기집단의 약점을 찾아내 지적하거나 불확실성에 대비한 객관적 예측도 병행한다. [123RF]

이들은 대부분 국내외 유수 대학을 나와 경영수업을 착실히 받아왔다. 뛰어난 참모진도 포진해 있다. 경영계 화두가 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맞춘 경영 방식으로 탈 나지 않게 그룹을 이끌어갈 것이다. 개인적 사유의 법적 문제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집단지성을 활용한 평균 이상의 경영능력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업의 퀀텀점프(대도약)를 위해선 창업세대와 같은 직관에 근거한 과감함이 필요할 때도 많다. 때론 상식을 뛰어넘는 도전적 결단이 차별화된 경영능력을 보이고, 그룹의 미래 또한 담보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선 통찰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며 균형감을 갖춰야 한다. 사실 아무리 뛰어난 참모진이라 할지라도 오너에게 직언하기는 쉽지 않다. 오너의 비위에 맞춘 듣기 좋은 이야기만 나올 수 있다. 그룹의 리더십이 교체되는 시기의 젊은 리더일 경우 그럴 가능성이 크다. 뛰어난 레드팀이 필요한 이유다. 아울러 더 중요한 것은 오너 경영인이 그들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듣고 의사결정에 활용해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고, 그 디테일을 찾아내는 게 바로 레드팀이다. 재계 3·4세들의 성공 또한 여기에 달렸다.

권남근 헤럴드경제 뉴스콘텐츠부문장 겸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