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에도 슬픔이' 등의 작품을 내놓으며 1960년대 한국 영화를 이끈 김수용 감독이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사진은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 감독의 빈소. [연합] |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3일 별세한 한국 영화의 거장 김수용 감독은 196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감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40년에 걸쳐 내놓은 작품만 100편이 넘는다.
고인의 작품 가운데 1965년에 내놓은 '저 하늘에도 슬픔이'은 그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노름에 빠져 집안일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와 가출한 어머니를 둔 초등학생 윤복이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해 당시 서울에서만 28만5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톱스타였던 배우 신영균이 가난한 학생들에게 헌신적인 선생 역을 맡았고, 그의 동료이자 윤복의 담임은 조미령이 연기했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조명한 리얼리즘 색채가 짙은 이 영화는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은 1984년 같은 제목의 리메이크작을 연출하기도 했다.
고인은 1967년 한 해에만 10편을 내놓는 등 다작으로 유명했지만, 이 시기 그의 영화는 작품성도 뛰어나 대부분 문예영화로 분류된다. 한국 영화 사상 보기 드문 사례라는 게 평론가들의 평가다.
고인의 영화는 한국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게 많다.
그는 '굴비'(1963)를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선보이려고 하다가 일본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 이야기'(1953)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불거진 것을 계기로 한국 문학 작품을 영화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오영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갯마을'(1965)이 대표적이다. 고깃배의 난파로 남편을 잃은 여성이 많은 바닷가 갯마을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문예영화의 대명사로 꼽힌다.
'안개'(1967)는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6·25 전쟁 때 병역을 피했던 남성이 부잣집 딸과 결혼해 출세 가도를 달리다가 고향을 찾아 음악교사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편집 등 서구 모더니즘 영화의 연출 기법을 과감히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춘원 이광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유정'(1966)도 있다. 이 작품은 윤정희, 문희와 함께 '트로이카'로 불리던 배우 남정임의 데뷔작으로도 유명하다.
고인은 예술을 추구하면서도 진지한 사회적 비판의식을 놓치지 않았다. 사회성이 짙은 작품으로는 '사격장의 아이들'(1967), '물보라'(1980), '도시로 간 처녀'(1981) 등이 꼽힌다. 이 또한 리얼리즘의 성격이 강한 영화들이다.
'도시로 간 처녀'는 시골 출신 버스 안내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조명해 화제가 됐다. 당시 버스업체의 사주를 받은 노조가 극장 앞에서 반대 시위를 해 상영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1958년 '공처가'로 데뷔한 고인은 초기에는 주로 코미디 영화를 연출했다. 그러다가 멜로 드라마 '애상'(1959)으로 연출의 폭을 넓혔고, '굴비'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작품성이 뛰어난 문예영화를 선보였다.
고인이 전성기에 연출한 '청춘교실'(1963)은 배우 신성일과 엄앵란이 주연한 작품으로, 1960년대 청춘 영화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전성기인 1960년대를 지나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다. 이 시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도시로 간 처녀들' 외에도 '토지'(1974), '야행'(1977), '화려한 외출'(1977) 등이 있다.
고인은 1999년부터 2004년까지는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도 지냈다. 당시 그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검열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본인이 규제 기관을 이끌게 된 데 대한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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