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퍼의 연출·주연…아내 역 캐리 멀리건 열연
[넷플릭스 제공] |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내면의 여름이 노래를 멈췄다면 모든 노래가 멈춘 거야. 모든 노래가 멈췄다면 작곡은 끝이지.’ 아내가 한 말이에요.”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작곡가 레너드 번스타인에겐 천재라는 수식어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그는 뉴욕 필하모닉 상임지휘자를 역임하면서도 교향곡, 관현악, 발레, 합창,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작곡했다. 심지어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음악으로 전세계 대중을 사로잡기도 했다.
이러한 화려한 커리어와 위대한 업적 뒤엔 그의 아내 펠리시아의 지지와 내조가 있었다. 그가 인터뷰에서 아내를 언급한 발언 역시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펠리시아는 칠레 출신의 배우였다. 나름 유망주 배우로 꼽혔지만 결혼과 함께 커리어에서도 멀어졌다. 펠리시아는 남편의 내조와 자녀 육아를 주로 했다.
뜨거웠던 연애와 달리 이들의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번스타인의 남성 편력 때문이다. 그는 양성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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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이러한 번스타인 부부의 복잡한 결혼생활을 파헤친다. 영화는 ‘스타 이즈 본’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배우 브래들리 쿠퍼가 연출과 주연을 모두 맡아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작품이다.
당초 연출을 맡으려고 했다가 일정 상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스타 이즈 본’의 개봉 전 초기 컷을 보고선 쿠퍼에게 대본을 건넸다고 한다. 쿠퍼는 대본을 읽은 지 몇 시간 만에 연출 제의를 승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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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번스타인의 화려한 업적을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번스타인 부부가 애증으로 쌓은 결혼 생활을 내밀하게 조명한다.
행복했던 이들 부부는 펠리시아가 번스타인의 성적 정체성을 알게 된 이후부터 틀어진다. 냉랭해진 이들은 결국 별거를 선택하지만, 이내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며 다시 합친다. 이후 펠리시아는 암 진단을 받고, 번스타인은 아픈 그녀의 곁을 끝까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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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쉽사리 이해하기 쉽지 않은 그들만의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복잡하고 애증 섞인 결혼 생활이 피부에 와닿게 하는 것은 펠리시아로 분한 캐리 멀리건의 열연 덕분이다. 펠리시아는 번스타인의 성적 정체성을 안 이후에도 세 자녀를 위해 꿋꿋하게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 멀리건은 자녀들에겐 책임감 있는 엄마였지만 여자로선 속절 없이 무너지며 속앓이 하는 모습을 복합적으로 표현한다. 펠리시아는 때로는 폭발하고, 때로는 번뇌와 절망을 삼킨다. 일부 기혼 여성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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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퍼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완벽하게 번스타인으로 분한다. 쿠퍼는 아내를 애정하면서도 주변 남성에 대한 끓어오르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양면적인 번스타인을 대담하게 담아낸다. 아울러 장장 6시간에 걸친 분장과 실제 지휘자를 능가하는 지휘 실력으로 관객들을 압도한다. 특히 영화 중간에 쿠퍼가 6분 넘게 지휘하는 장면은 기립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로 명장면이다. 쿠퍼는 이를 위해 6년 간 준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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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퍼의 연출 방식은 독특하다. 영화는 2시간 동안 스토리를 빠르게 전개시키는데, 장면 전환 하나로 10년 이상의 세월이 한 번에 지나가기도 한다. 현실을 뛰어넘는 뮤지컬 방식으로 내용이 전개될 때도 있다. 때문에 영화가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상쇄하는 것은 화면 연출 방식이다. 영화는 흑백으로 시작됐다가 이들 부부의 생활이 전환점을 맞을 무렵 컬러로 바뀐다. 영화를 좀 더 자세히 보면 화면 비율도 여러 번 바뀐다. 처음엔 35mm 흑백으로 나왔다가 이후 다양한 화면 비율로 영화가 전개된다. 40년대부터 80년대까지를 섬세하게 그려내기 위해 화면 비율을 여러 번 조정했다는 전언이다. 쿠퍼는 “이렇게 해야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그 의도를 설명했다.
번스타인의 음악을 듣는 것도 영화의 또 다른 재미다. 영화는 대표곡 ‘미사’를 비롯해 번스타인의 실제 명곡들을 담았다.
6일 극장 개봉. 20일 넷플릭스 공개. 15세 이상 관람가. 129분.
ren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