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양화대교’ 걸어 ‘해피엔딩’ 향해…‘미친 과학자’ 자이언티의 우아한 음악 [인터뷰]
6년 만에 정규 3집 ‘집(Zip)’으로 컴백
자이언티 [더블랙레이블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트렌드의 최정점에 있었다. 나른하고 개성 강한 창법, 적당히 몽환적이나 소리에 힘이 실렸다. 지금 당장 ‘양화대교’를 거닐어야 할 것 같고, 더 늦기 전에 냉장고를 열고 무엇이든 ‘꺼내 먹어야’(2015년 발매한 ‘꺼내 먹어요’) 할 것만 같았다. 시간은 흘렀고, 무려 6년 간 정규 앨범은 없었다. 마침내, 자이언티의 새 음악이 나왔다.

최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자이언티는 “이번 앨범은 그동안 해온 커리어의 뾰족했던 부분들을 한 데 모은 압축 파일(Zip)이자, 사람들이 죽고 사는 공간(집)에 어우러질 수 있는 음악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붙여진 앨범 명이 ‘집(Zip)’. 2017년 2집 ‘OO’ 이후 6년 만이다.

“뮤지션이라는 직업인으로 열심히 했지만, 아티스트로는 제 이야기를 한지 오래 되다 보니 이제 좀 정리해야 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1년 ‘클릭 미’(Click Me)로 데뷔한 자이언티는 12년 간 대중 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확고한 음악 세계에 독창적인 감성으로 획일화된 음악 시장에서 삐죽 튀어나온 듯한 아티스트였다. 그는 “창작이 좋아 음악을 시작했고, 창작 자체가 원동력이었던 때가 있었다”며 “그러다 연약한 아티스트로서 생존하기 위해 마음이 급해지고 날을 갈아야 하는 시기도 있었는데, 그 즈음 하고 싶은 말이 없어 작업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슬럼프,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까지 여러 날들을 거쳐 ‘0’의 상태로 돌아왔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거리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걸리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몇 달이나”(‘집’ 10번 트랙 ‘해피엔딩’ 중) 걸렸다. 그는 “창작의 부활이자, 0에서 출발해서 1을 만들자는 게 이번 목표”라고 했다. 그의 ‘해피엔딩’은 1로 향하는 과정에 있다.

자이언티 [더블랙레이블 제공]

오랜만의 앨범이지만, 작업 기간은 5~6개월. 자이언티가 경험하고 느끼는 최근의 감정과 이야기를 담았다. 그의 히트곡 중 하나인 ‘양화대교’ 역시 택시기사인 아버지와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고, ‘노래’는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담았다. 자이언티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공감대를 만들려고 하지는 않는다”며 “다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그래도 뭔가 들을 만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집에는 트리플 타이틀곡 ‘언러브’(UNLOVE)·‘모르는 사람’·‘V’를 비롯해, 알앤비(R&B) 솔 장르 인트로곡 ‘하우 투 유즈’(How To Use), 그래미 어워즈를 수상한 유명 트럼펫 연주자 베니 베낵 3세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재즈 힙합 장르 ‘내가 좋아하는 것들’, 힙합 알앤비곡 ‘낫 포 세일’(NOT FOR SALE), 보사노바 리듬을 가진 소프트 알앤비곡 ‘해피엔딩.’ 등 총 열 곡이 수록됐다.

‘언러브’는 애플뮤직에서 플레이리스트에 속한 노래를 삭제할 때 누르는 버튼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좋아요’를 누른 게시물도 ‘클릭 한 번’으로 하트를 지울 수 있는 점에서 착안해 만들었다. 이 곡은 영국의 일렉트로닉 듀오 혼네(HONNE)가 작곡과 편곡에 함께 했다.

자이언티 [더블랙레이블 제공]

자이언티는 “요즘 세대 청년들이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할 때 단호하고 무감각해졌음을 가리키는 ‘리셋 증후군’이란 말도 생겼다”며 “그런 현상이 이 곡의 밀도를 강화하고 세계관을 확장하는 소재가 됐다”고 말했다. 앨범이 늦어지는 동안 자이언티의 감정도 곡 안에 담겼다. 그는 “앨범을 낸 지 오래돼 많은 리스너가 제 음악을 플레이리스트에서 지웠을 것 같아 슬픈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뮤직비디오도 감각적이다. 영상미가 돋보인다. 시나리오는 자이언티가 직접 썼다. 그는 “완벽주의자이자 나르시시스트인 남자 주인공의 이별을 생각하며 썼다”며 “여자의 눈물을 보고서야 ‘이 사람이 날 사랑했구나’라고 느낄 것 같은 인물을 주인공 삼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타이틀곡 ‘모르는 사람’은 1990∼2000년대 사운드가 엿보이는 재즈풍 노래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는 배우 최민식이 출연했다. 자이언티는 “최민식 배우가 지금까지 한 번도 뮤직비디오에는 출연한 적이 없다고 하셔서 큰 영광이었다”며 “우리가 모두 최민식의 얼굴과 목소리를 모두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분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다. 그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2년의 시간 동안 자이언티의 존재감은 선명했다. 음악으로도, 예능으로도 누구도 아닌 자이언티의 모습으로 존재했다. 심지어 최근 몇 년 사이엔 ‘미친 과학자’라는 별명도 생겼다.

그는 “몇 년 전 ‘미친 과학자 같다’는 댓글을 봤는데, 그것이 별명이 됐다”며 “과학자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닌 데다 미친 과학자는 능력이 있어 보인다는 말로 들려, 색다른 매력을 봐준 거라 생각해 좋은 뜻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웃었다.

음악으로 승부수를 던져 여러 성취를 이뤘지만, 그에게 부침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6년의 시간이 그랬다. 그는 “힘든 부분이 많았지만, 이를 벗어나는 방법은 결국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데뷔 이후 오랜 시간을 돌아보며 그는 “대중 음악계에서 필요한 인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온 날들”이라고 했다.

“새로운 세대의 아티스트, 뮤지션과 소통하면서 낡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전, 언제나 우아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제가 생각하는 우아함은 주체성을 가진 태도예요. 창작자로의 우아함은 완성도를 가진(추구하는) 자세이고요. 이번 앨범은 태도 자체는 우아하지만, 완성도는 그렇게 만족스럽진 않아요. 하지만 한 발 더 나아갔다는 점에서, 우아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shee@heraldcorp.com

연재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