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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윤 정부, ‘더블 플러스 원’ 문화정책 펼치길

근대 이후 문화만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도 드물 것이다. 독일에서는 18세기 후반 괴테의 5년 선배인 헤르더가 문화를 상대적이며 역사적인 의미의 개념으로 사용한 이후, 문화는 인간과 사회, 역사를 망라하는 용어로 쓰였다. 20세기 초반 괴테의 영향을 받은 에른스트 카시러의 유기적 상징체계라는 문화론을 포함한 독일의 정신적 문화론과 프랑스의 물질적 문명의 구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의미가 없어지고, 문화는 물질과 문명 등을 포함하는 종합적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이제 문화는 인간과 사회의 정신적, 물질적, 도덕적, 역사적, 이념적 측면 등의 모든 부면에 쓰이고 있다.

한 개인에게 문화는 그 사람의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 인간과 사회를 이어주는 좌표의 역할을 하는 체계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문화의 의미와 역할은 그 연결성에 있다. 개인과 집단, 개인과 사회 및 국가를 연결하는 데 문화가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 나라의 문화 정책은 단순히 문화 단체와 문화 예술인 집단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다. 국가의 문화 정책은 문화의 의미처럼 국가의 구성원에게 자신이 사회와 국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동질성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정책이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문화 정책도 그런 의미에서 입안, 실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현 정부의 문화 정책은 뚜렷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른바 한류 내지 K-대중문화의 국제적 인기와 성과에 의지하는 개별 정책만이 강조될 뿐, 국민 전체를 포괄하는 체계적 문화 정책은 찾을 수 없다. 물론 지난 정부에서 문화 영역에서 이념적 좌파 편향성을 추구하는 정책이 난무했고, 문화 예술인들과 그 단체들에서 좌파 이념의 편향성이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우려할만한 위선과 선동까지 일삼는 이념적 편향성은 우리 문화계가 성찰해야 할 지점이다.

그런데도 현 정부가 그들이 무서워 문화 정책을 축소하거나 외면할 필요는 없다. 문화는 개인과 이념을 연결하는 것이라 일정 이념성은 당연한 것으로 봐야 한다. 오히려 문화의 좌우 이념성을 모두 포괄하는 문화 정책을 펼치면 된다. 문제는 이념적 상대가 없는 편향성이지, 이념성 자체가 아니다. 편향된 이념과 단일한 이념의 진공 상태는 문화도 아니며 문화가 될 수도 없다. 문화의 이념성은 상대를 인정할 때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가 존재하고 존재할 수 있게 지원하는 정책이 국가 문화 정책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더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더블 정책은 비단 이념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성향은 원래 이중성에 있다. 성실함과 게으름, 이기심과 이타심, 개인성과 집단성, 금욕과 물욕 등의 이중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국가는 이런 이중성이 조화롭게 존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지원해야 한다. 또한 이것은 나만 아니라 나와 다름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인정하면 우리 사회의 많은 갈등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는 나와 다름을, 각자의 다름을 인식할 수 있게 각자의 언어를 문화적으로 번역해서 다름을 연결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다양한 문학 번역과 순수와 대중을 포괄하는 예술 공연과 전시, 문화 공감 행사, 공감 이론과 교육 등을 지원하는 정책, 다양한 문화 주체들이 공존하는 문화 생태계를 만드는 정책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문화는 인간과 사회에 도움과 이득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원래 진정한 문화는 개인과 집단에 항상 이익을 주는 것이다. 만약 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그건 문화가 아니라 문화의 갈등이거나 문화를 가장한 투쟁일 뿐이다. 정부는 문화의 이런 본질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이론을 지원하고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의 본질과 효용성을 인식하게 해주는 다양한 문화 교육과 행사 및 문화가 주제가 된 메타 문화 공연 등을 그 예로 지적할 수 있다. 이것은 플러스 문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정책을 통해 문화란 나와 사회에 플러스가 되는 것이란 인식이 퍼져나가야 한다.

문화의 지향점은 어디일까. 문화는 결국 하나를 지향한다. 행복은 그중 한 예다. 나의 행복, 사회와 국가의 행복, 인류의 행복. 문화는 행복을 가져다줘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것은 반(反)문화거나 지향해야 할 문화의 모습이 아니다. 다른 의미로 문화는 단일성을 지향한다. 나의 정체성, 사회와 국가의 정체성도 그것이다. 정부는 개인과 국가의 정체성을, 나와 국가가 긍정적 의미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행복 교육, 행복의 의미를 알려주는 문화 행사와 예술 공연 및 전시, 다양한 정체성을 찾는 행사, 나와 국가의 관계를 중립적으로 성찰하는 교육과 행사 등은 생각할 수 있는 예로 들 수 있다. 이것을 원(하나) 문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문화 정책은 개인을 행복하게 하고, 사회를 통합시키고, 국가를 신뢰하게 할 것이다. 하루빨리 윤 정부의 거시적 문화 정책이 공표되고 실시되기를 기대한다.

조우호 덕성여대 독어독문과 교수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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