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콘서트엔 끔찍한 교통 지옥
최악의 주차 대란에 어수선한 동선
악뮤 공연이 있던 날 인스파이어 아레나 [고승희 기자] |
[헤럴드경제(인천)=고승희 기자] “라이브로 ‘러브리(Love Lee)’를 꼭 듣고 싶었는데, 떼창도 자신 있었는데 못 들었어요.”
지난 27일 오후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남매 듀오 악뮤(AKMU)의 콘서트에서 만난 30대 초반 박주희 씨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직접 운전해 공연장을 찾았지만, 지옥 같은 교통난으로 5시 49분이 돼서야 공연장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당초 오후 5시로 예정됐던 이날의 콘서트는 20분이나 늦어졌다. K-팝 가수 공연 사상 전례 없는 일이었다. 당시 공연장에서 주최 측은 “주변의 교통 상황으로 인해 5시 20분에 시작하겠다”는 안내 방송을 내보내며 모히건 인스파이어 리조트 입구에서 발이 묶인 관객들을 기다렸다.
지난 27~28일, 이틀 간 열린 악뮤의 콘서트 ‘악뮤토피아’를 보기 위해 관객들은 이미 전날부터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이곳은 K- 팝 팬들에게 익숙한 공연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이나 엑스(X, 옛 트위터)를 통해 이동 시간과 주차 상황을 묻는 글들이 다수 올라왔다.
공연 첫날이었던 27일은 토요일 오후였던 만큼 관객 대다수가 교통 대란을 예상했다. 기자 역시 오후 2시 58분 서울 강남구에서 출발했다. 네이게이션이 알려주는 ‘최소 시간’으로의 이동 거리는 1시간 30분. 도착 예정시간은 4시 28분 경이었기에, 주차를 마치면 다소 빠듯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공연 시간에 늦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막상 출발을 하자, 가는 길은 곳곳이 교통 체증을 빚었다. 도착 예정 시간은 점점 늦어져 다소 조급해지기도 했다. 5분, 또 5분 늦어졌을 때만 해도 빠듯하지만 주차장에 도착해 전력질주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문제는 인천으로 접어들어 인천국제공항을 지나며 인스파이어가 마침내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인스파이어 리조트로 향하는 길목 중 한 곳은 이미 줄줄이 이어진 차들로 인해 오도 가도 못했다. 다행히 덜 막히는 곳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 덕에 차량 운행은 가능했지만, 목적지를 2.5km 남겨둔 지점부턴 어느 곳이나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준 아레나 주차장 도착 시간은 4시 45분.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한 눈에 봐도 어느 입구로도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안내 요원들은 첫 번째 출구부터 이미 모든 차량을 넘겨 보냈다. 인스파이어로 들어가고자 하는 차량은 세 개의 입구를 지나쳐 유턴에 유턴, 다시 유턴을 반복했다. 목적지를 눈 앞에 두고 발도 딛지 못하는 상황은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길게 늘어선 차량이 각각의 입구를 막고 있었고, 출입구를 거쳐 주차장으로 들어가기까지만 20여분이 걸렸다. 사실 20여분 정도면 운이 좋은 편이었다. 다른 관객들은 입구로 들어서기까지 40분 이상 기다리기도 했다.
주차장 상황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주차 안내판은 여유 자리가 꽤 있다는 식으료 표시됐지만, 실제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었다. 주차 타워로 가까스로 들어와 헤매고 헤맨 끝에 주차를 마친 시간이 5시 25분이었다.
악뮤 공연이 있던 날 인스파이어 아레나 [고승희 기자] |
이제 전력질주가 시작됐다. 주차 타워에서 아레나까진 10분. 공연 관객과 리조트 투숙객의 동선이 전혀 분리돼 있지 않아 인파에 막혀 아레나로 향하는 길은 순조롭지 않았다. 공연장으로 향하는 관객들은 난데없이 하얀 가운을 입은 스파 고객들을 마주하고, 투숙객들 역시 편안한 여가를 즐겨야 할 공간에서 북적이는 인파를 만나는 등 서로 불편한 상황이 연출됐다.
티켓을 찾고 아레나에 도착하자 이미 지연 관객들이 입장 입구마다 10~20명이 늘어선 상황이었다. 5시 35분이 지나 입장하자, 악뮤는 첫 멘트를 진행 중이었다. 공연 시간에 늦은 관객들은 이후에도 계속 쏟아져 들어왔다. 오후 5시 49분에 한 차례 관객이 더 들어왔고, 심지어 오후 6시까지도 관객들이 뒤늦게 자리를 찾았다.
서울 강서구에서 온 조아름(20) 씨는 “집에서 3시에 출발했는데, 그리 먼 거리가 아닌데도 차를 타고 오니 주차가 힘들어 5시 10분에 도착했다”며 “다행히 공연이 늦게 시작해 처음부터 볼 수 있었지만 오는 길이 만만치 않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악뮤의 공연이 열린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공연장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대중음악계에 ‘단비’ 같이 찾아온 국내 최초의 아레나다. 잠실 주경기장, 고척 스카이돔이 공사로 문을 닫고 케이스포돔(옛 체조경기장)만이 1만 명 이상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서울의 유일무이한 공연장으로 남은 현재,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대중음악계의 새로운 전초기지로 떠올랐다.
최초의 아레나와 어느 좌석에서도 시야 방해 없이 좋아하는 가수를 마주할 수 있는 기쁨은 크지만, 이 곳은 공연 전 경험에선 ‘빵점’에 가까웠다.
공연은 ‘총체적 경험’이다. 한 편의 공연을 만나기 위해 관객들은 콘서트 2~3달 전부터 치열한 피케팅(피 튀기는 티켓팅)을 경험하고, 설렘을 안은 채 공연 날을 기다린다. 공연 당일은 일종의 여행과도 같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모든 과정이 경험으로 켜켜이 쌓여 그날의 공연에 대한 전체적인 만족도가 가슴에 새겨진다.
‘월드디제이페스티벌’을 비롯한 다수의 음악 축제를 열고 있는 비이피씨탄젠트의 김은성 대표는 “공연장을 선택할 때 필요한 조건들이 있다”며 “대규모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절대적 면적, 안전한 귀가를 위한 접근성, 원활한 운영과 편의를 위한 공간 확보가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말대로 라면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전문 공연장으로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접근성 측면에서 약한 인스파이어는 주차 시설이라도 넉넉했어야 하는데, 관객들을 수용하지 못할 정도의 협소한 주차 공간은 관객들의 불편을 극에 달하도록 했다. 인스파이어에서 주차 안내 직원은 “주말엔 오후 1시만 돼도 만차가 돼 자가용 이용이 어려운데, 특히 이번 주는 공연이 겹쳐 상황이 더 심각했다”고 말했다.
주차난을 뚫고 들어가도 공연 전엔 머물 수 있는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충분치 않았다. ‘대기 시간 60분’은 기본인 데다, 다소 높은 가격대는 부담스러웠다. 이런 환경 탓에 앞서 이곳에서 샤이니·방신기 콘서트, 멜론뮤직어워즈, SBS 가요대전이 열릴 당시 수 많은 어린 팬들이 아레나 입구 로비(로툰다)에 앉아 삼각김밥을 먹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관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푸드코트는 올 2분기께 개점을 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인스파이어 아레나 제공] |
현재까지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의 공연 관람을 위한 여정은 좋은 기억으로 남기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공연 시간에 느낀 충만함으로 공연 직전에 받은 스트레스를 씻을 수는 있으나, 공연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또 최악의 경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인스파이어 앞 사거리를 빠져나가는 데에만 걸리는 시간만 무려 1시간.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관객들에게도 기다림은 마찬가지다. 13㎞ 떨어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로 향하는 버스가 5분 간격으로 배치되는데, 그래도 7000여명의 관객이 모두 빠져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총 1시간30분이나 된다.
공연을 마친 이후 만난 남정민(33) 씨는 “판교에서 인스파이어 아레나까지 거리가 만만치 않은 데다 토요일이라 교통 체증을 예상해 2시 30분에 출발했는데도 굉장히 오래 걸렸다”며 “주차에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린 데다, 주차장에서 오가는 동선이 복잡해 자칫 출구로 나갈 뻔하기도 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공연을 본다는 기쁨은 크지만, 토요일 하루 공연 하나 보기 위해 5~6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지간하면 이곳에서의 콘서트는 피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 역시 악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왕복 5시간을 오갔다.
시급한 문제는 주차 공간의 충분한 확보와 동선 정리다. 장현기 인스파이어 아레나 상무는 “현재 인스파이어 리조트에는 3600대의 차량을 주차할 공간이 있고, 이면도로까지 하면 4000대를 주차할 수 있다”며 “리조트 주변 빈 공간이 많아 올해 상반기까지 2000대 주차 공간을 추가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