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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거란전쟁' 고려vs거란간 외교 전략을 보는 재미
속고 속이는 기세 싸움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고려거란전쟁’을 보면 고려와 거란간의 첨예한 외교 심리전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이 드라마가 다루는 시기 바로 직전인 993년, 거란은 소손령 장군을 앞세워 고려를 침입했다.

거란 1차침입으로 불리는 이 전쟁은 고려의 북진정책과 친송정책에 자극받은 거란이 일으켰다. 거란은 연운 16주를 회복하려는 송과의 전쟁을 앞두고 후방에 있는 고려가 신경이 쓰여 고려부터 정리할 필요성을 느껴 대군을 앞세웠다.

고려는 완벽한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외교관 서희가 있어 적에게 침략 당하고도 오히려 영토를 얻는 기이한(?) 전쟁사를 남겼다. 전쟁에 지고도 승자가 누리는 과실을 취하게 된 것이다. 적장 소손령은 서희의 논리에 말린 것이다. 서희는 소손녕에게 "거란과 가까이 하려고 해도 여진이 도적질을 하며 길을 막고 있다. 여진을 쫓아내고 길을 만들어내면 거란과 교류하며 조공도 바치겠다"고 말해 강동 6주를 얻어냈다. 그래서 고려는 압록강 아래 6개 지역에 성을 쌓아 강동 6주를 지킬 수 있었다.

물론 이 때도 고려 신하들은 거란에 항복해야 한다는 편과 평양 이북 땅을 넘겨주자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서초동에 있는 국립외교원 입구에 서희 동상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국립외교원 로비와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있는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라’는 문구도 서희 할아버지와 가장 매치가 잘된다.

외교란 이런 것이다. 미국은 1882년 인천에서 조미통상조약(신헌-슈펠트)을 맺고도 1905년 일본과 대한제국을 일본이 지배하도록 미국이 도와준다는 카스라 태프트 밀약을 맺는다. 이 두 조약은 99.9% 상충한다. 하지만 미국은 두 조약중 어떤 것이 국익에 더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서희의 외교담판은 미국의 이런 외교보다 차원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강감찬도 광종때 생긴 과거 시험에서 장원급제해(성종3년) 예부시랑과 한림학사를 거친 전형적인 문인이다. 귀주대첩에 나갈 때는 70세였다. 그래서인지 '고려거란전쟁'에서 예리한 촉을 발동해 거란의 계략을 간파하는 등 두뇌 기세 싸움이 흥미진진하다.

요즘 ‘고려거란전쟁’은 재침을 준비하는 거란과 고려의 속고 속이는 외교 전략으로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지난 21, 22회 방송에서 양국이 펼친 고도의 외교 심리전은 앞으로 펼쳐질 전개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고조시켰다. 이에 후반부에 등장한 고려와 거란의 외교 전략을 비교해봤다.

-2차 전쟁 후 각성한 현종의 지방 개혁 vs 거란, 친조 명분 삼아 재침 돌입

2차 전쟁을 몸소 경험하며 각성한 고려의 황제 현종(김동준 분)은 각고 끝에 지방 각지에 안무사 파견을 단행하며 본격적인 지방 개혁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현종은 강감찬(최수종 분)을 비롯해 신하들과 의견 충돌을 빚는가 하면, 고려 황실은 지방 개혁에 찬성하는 친 현종파와 반 현종파로 나뉘어 대립각을 세웠다. 현종은 김은부(조승연 분)를 구하기 위해 원성(하승리 분)을 아내로 맞이하기로 했고, 지역관 대신 75명의 안무사를 각지로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거란은 척후 활동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재침 계획을 세웠다. 소배압(김준배 분)은 친조를 청한 고려 국왕이 약속대로 거란을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을 명분 삼아 군사를 징발하자고 제안했다. 현종은 거란의 척후병들이 다시 준동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성벽을 보수, 육위의 군사들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거란, 현종 친조 요청→내부 반란→서북면 요충지 요구

거란은 사신을 통해 현종의 친조를 재차 요청했다. 2차 전쟁 당시 거짓 친조 작전으로 거란군을 철군시켰던 고려는 전란 수습이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답하며 친조를 미뤘다. 야율융서(김혁 분)는 차일피일 친조를 미루는 고려에게 곧 대가를 치룰 것이라며 재침이 임박했음을 경고했다.

거란은 고려와의 전쟁을 위해 군사까지 징발했으나, 서북 국경 지역의 조복 부족이 반란을 일으키는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닥뜨렸다. 소배압은 내부의 반란부터 진압해야 한다며, 군사들을 거란의 서북 국경 지역으로 보내야 한다고 설득했다. 또한 고려에 사신을 보내 예정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전쟁으로 고려를 압박해 친조 대신 강동 6주를 얻어내기로 했다.

-김은부, 목숨 건 사신 행렬→강감찬, 거란 작전 꿰뚫은 지략 발휘

김은부는 고려가 전쟁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거란으로 향했다. 곧 거란이 전쟁을 선포할 것이라는 야율융서에게 김은부는 친조를 청하는 제후국에게 전쟁을 선포할 수 없다며 설득했다. 하지만 고려의 기만술에 수없이 당했던 야율융서는 소배압에게 김은부를 당장 베라고 명했다. 송나라와 당항 사신에 의해 목숨을 부지한 김은부는 거란군이 고려 국경이 아닌 서북 방면으로 진군하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고려에 알리기 위해 목숨 건 사투를 벌였다.

강감찬은 거란이 친조 대신 강동 6주를 내어달라는 협상 시도에 속내를 의심했다. 분명 거란 내부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확신한 그는 주연(술을 곁들인 연회)을 열어 거란의 의중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로 했다. 술상을 사이에 둔 양국의 사신들은 강동 6주를 두고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거란의 기만술을 간파한 강감찬은 거란의 선발대가 압록강 너머에 당도했다는 소식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은 거란 사신은 고려가 완강하게 거절하자 강동 6주 대신 군사적 요충지인 흥화진을 내어달라고 요청해 극강의 스릴을 선사했다.

생사기로에 놓인 김은부와 흥화진을 두고 고민에 빠진 현종은 “군주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건 군주의 자격이 없는 거요. 허나, 그 두려움에 짓눌려 싸우기도 전에 굴복하진 않을 것이오. 허니 어서 가서 전하시오. 흥화진을 갖고 싶으면 이 고려를 굴복시키라 하시오“라며 흥화진을 내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 단언하며 안방극장에 통쾌한 한방을 날렸다.

이처럼 ‘고려거란전쟁’은 화려한 액션으로 중무장한 전쟁 씬 외에도 첨예한 외교 심리전으로 흥미진진한 전개를 이어가고 있다. 과연 양국의 기세 싸움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지, 또한 거란에서 탈출하려다 붙잡힌 김은부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 이목이 집중된다.

한편 ‘고려거란전쟁’은 K-콘텐트 경쟁력 분석 전문 기관인 굿데이터코퍼레이션 공식 플랫폼 펀덱스(FUNdex)에서 발표한 1월 5주 차 TV-OTT 종합 화제성 부문에서 2위를 기록하며 화제성을 입증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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