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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우크라이나 전쟁, 출구는 있는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어느새 만 2년이 돼 간다. 이번 2월 24일이 전쟁 2주년이다. 그간 양측의 희생자 숫자는 적게 잡아도 50만, 많게는 15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약 800만명의 우크라이나인은 삶의 터전을 잃고 난민 신세가 되었다. 이런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가 2023년 6월부터 대반격을 개시했으나 기대한 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으며, 8월 이후 군사적 교착에 빠져 전선이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태다. 전형적인 소모전 양상이다. 승패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뼈와 살을 갈아 넣는 살육전만 계속되고 있다.

전쟁이 끝나지 않고 소모전이 계속되는 이유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의 입장이 타협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1991년 국경으로 되돌릴 때만 멈출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2022년 침공으로 러시아가 점령한 동남부 4개 주는 물론 2014년에 합병된 크림반도까지 모두 찾아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침략당한 우크라이나로서는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사항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도 우크라이나가 패배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다. 러시아의 영토 정복 전쟁이 성공한다면 유럽의 국경선이 흔들릴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나머지 영토가 위협받을 수도 있고 중동부 유럽 국가들도 안전을 확신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규칙 기반 질서에 대한 믿음이 훼손되는 전 지구적 파급 효과도 우려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러시아가 점령 지역을 토해 내며 빈손으로 물러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푸틴이 실각하고 러시아가 완전히 패배하는 조건에서나 가능한 얘긴데, 이런 시나리오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토의 직접적인 군사 개입이 없는 한, 병력과 물자 면에서 절대 열세에 있는 우크라이나가 소모전을 견디며 승리를 쟁취하는 것은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성격이 줄곧 제한전쟁이다. 전쟁의 목표도 제한적이고 싸우는 전장도 우크라이나 영토 내로 한정돼 있다. 갖고 있는 모든 무기를 사용하고 있지도 않다.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의 범위를 조심스럽게 넓혀갔고, 러시아는 핵무기를 위협만 할 뿐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제한전쟁에서는 ‘완벽한 승리’가 아니라 ‘유리한 조건’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전쟁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유리한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비용을 치를 것인가에 있다. 협상장에서 유리한 조건을 주장하기 위해 무한정 피를 흘릴 수는 없다. 피를 흘린다고 협상 조건이 유리해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면 어렵다면 어떻게 출구를 찾아야 할까? 이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주장 중 하나가 ‘한반도 모델’이다. 1953년 종전 이래 한반도는 평화를 유지하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엄연히 전쟁 지속상태다. 영구적인 평화 협정을 맺지 않았고, 단지 전투행위를 멈추는 데 합의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한반도처럼 현재 상태에서 전쟁을 동결하자는 게 한반도 모델의 아이디어다. 민감한 쟁점에 대한 최종결정을 미루는 일종의 미봉책이다. 이럴 경우 휴전선은 현재의 군사적 대치선인 동남부 4개 주가 분단선이 될 것이다. 물론 우크라이나가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잠정적 분단선이라고 하지만 결국 영구적 국경선으로 굳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모델이 제기되는 이유는 더 좋은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방의 지원이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으며 우크라이나 국민 입장에서도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파괴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현명하다고 할 수 없다. 한반도는 종전협정 이후 70년간 전쟁 없이 평화를 유지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자유와 번영을 누려왔다. 따라서 성공을 재정의하자는 게 출구전략을 주장하는 이들의 생각이다. 이미 모스크바에는 침략전쟁이 결코 값싸게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안겨주었다. 압도적 군사력 격차 때문에 러시아의 조기 승리가 예견된 것과는 반대로 수모에 가까울 정도로 러시아군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방의 일치된 단결과 대러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심각히 위축되는 곤란도 겪고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가 1991년 기준으로 영토를 회복해야만 규칙 기반 질서가 유지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게 서방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출구 모색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간단치 않다. 무엇보다 2024년 11월 미국 대선 일정이 있다. 무한정 전쟁을 지속하는 것도 부담이지만, 섣불리 타협에 나서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생각으로 보인다. 이대로라면 2025년 전쟁 3주년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당사자인 우크라이나 국민의 선택도 중요하다. 불만족스럽지만 종전을 수용함으로써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 대한민국처럼 서방의 일원으로서 재건과 번영의 기초를 다지자는 얘기는 아직 설득력이 없는 듯 하다. 얼마만큼 더 버텨야 더 이상의 전투가 무의미하다는 게 모든 당사자에게 명확해질까? 항전과 타협, 어떤 것이 더 전략적인지, 어떤 선택이 더 윤리적인지 국제 사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

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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