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7만원에 팔린 흔한 그림
덧칠 벗고 복원하자 드러난 명작
2017년 4억5000만弗 최종 낙찰
세상에서 가장 비싼 구세주의 그림이
사우디 무슬림 실권자 소유 ‘아이러니’
2011년 영국 내셔널갤러리에도 걸렸지만
일각선 다빈치 제자 그림 주장도 여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살바토르 문디 [크리스티 자료] |
“2억8000만달러, 자 끝났나요? 아마도 아니겠죠.”
2017년 11월 15일 수요일 밤, 미국 뉴욕 맨해튼의 록펠러센터에서 열린 크리스티 이브닝 경매장. 경매사의 가벼운 농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던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날 경매에 나온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가 그린 이 작품의 낙찰 추정가는 1억달러. 경매가가 낙찰 추정가 보다 배 이상 뛰었지만, 한껏 과열된 분위기가 식을 줄 몰랐다.
이 자리에는 누구나 다 아는 다 빈치가 그린 몇 점 남지 않는 작품이 있었고, 사람이 있었고, 돈이 있었다. 작품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입찰가격은 0.1초마다 100만달러씩 경쟁적으로 뛰었다. 서울의 아파트 한 채 값만큼 가격이 치솟으며 입찰 경쟁이 붙은 것이다. 그리고 나즈막이 들리는 한 입찰자의 목소리. “3억7000만달러.” 이윽고 숨 막히는 침묵이 20초간 이어졌다. 이제 끝나려나, 싶었던 바로 그때였다.
“4억달러.”
그제야 경매사는 봉을 두드리고 다른 한 손을 들어 입찰이 끝났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팔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단 19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수수료를 포함해 4억5000만달러. 당시 한국 돈으로 치면, 그림 한 점을 사기 위해 약 5027억원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이 금액은 지난 한 해 동안 한국에서 팔린 농심 신라면 매출과 맞먹는다.
2017년 11월 15일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 살바토르 문디가 지구상 역대 최고가로 낙찰됐다. [AP] |
▶위작 논란에 휘말린 구세주=지구상에서 가장 값비싼 이 작품의 이름은 바로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 라틴어로 세상의 구세주라는 의미이다. 그림 속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화가 다빈치가 1500년경에 완성한 그림이다. 다빈치가 50~60대에 그린 작품으로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함께 르네상스 미술의 전성기를 이끌던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사람을 안심시키는 듯하면서도 동요시키는 듯한 신비로운 눈빛, 입가에 머금은 희미한 미소, 구불구불하고 윤기가 흐르는 곱슬머리, 다빈치가 만든 특징적인 기법인 스푸마토 연출(윤곽을 희미하고 뿌옇게 그리는 명암법)까지.
일단 2011년 뒤늦게 발견된 이 그림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는 모든 것이 충분해 보였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다빈치의 회화 작품이 단 20점도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500년 만에 시장에 나온 다빈치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미술품 경매시장은 그야말로 들썩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위작 논란에 휘말리기 전까지 말이다.
▶어쩌다 뉴욕 경매장=사실 이 그림은 1958년 경매에 나왔을 때만 해도 약 7만원에 판매됐다. 그러니까 59년 만에 작품의 가격이 5000억원 넘게 뛴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림 가격이 역대급으로 ‘수직상승’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그림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거대한 두 번의 사건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
첫 번째 사건은, 바야흐로 1900년, 영국의 백만장자 수집가인 프랜시스 쿡 경이 이 그림을 손에 넣으면서 시작된다. 그 때만 해도 쿡 경이 가진 살바토르 문디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그림이었다. 무엇보다 작품 수준이 형편없었다. 마구잡이로 덧칠돼 있었다.
영국의 백만장자 수집가인 프랜시스 쿡 경이 가지고 있었을 당시, 작품 살바토르 문디 상태. 이 그림을 복원하기 시작하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진품일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위키피디아] |
어딘가 모르게 흐리멍텅해 보이는 작품 속 예수의 눈을 보게 되면, 과연 이게 다빈치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다. 쿡 경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는 이 그림이 다빈치의 제자인 안토니오 볼트라피오가 그린 그림을 누군가 복제해 그린 그림 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2005년 이 그림이 다 빈치의 그림일 수 있다고 믿는 미술상과 수집가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대반전이 시작됐다. 덧칠돼 회색으로 변색된 부분을 조심스럽게 닦아내는 복원 작업을 진행한 결과 그림 속 숨겨진 또 다른 그림이 발견된 것이다.
복원 과정. 차례대로 왼쪽 위, 오른쪽 위, 왼쪽 아래, 오른쪽 아래 순. |
그리고 놀랍게도, 감춰졌던 그림이 동판화가 바츨라프 홀라르가 다빈치의 원본 그림을 보고 그린 1650년 작 동판화와 거의 똑같았다. 이 그림이 다빈치가 그린 진품이라는 강한 확신이 일기 시작했다.
동판화와 복원된 그림, 이 둘을 한 번 비교해볼까. 예수의 표정은 물론이거니와 손동작, 수정구슬의 표현, 예수가 입은 푸른 겉옷의 불규칙한 주름까지 빼닮았다. 당시 복원을 진행한 뉴욕대 보존센터의 선임연구원 다이앤 드와이어 모데스티니는 물론, 작품 진위 연구에 참여한 전문가 모두가 만장일치로 “이 그림은 다빈치가 그린 진품이 맞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바츨라프 홀라르가 다빈치의 원본을 보고 그린 1650년 작 동판화(왼쪽)와 살바토르 문디 [위키피디아·크리스티] |
그리고 2011년, 그림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영국 국립미술관인 내셔널갤러리가 복원을 거친 이 그림을 전시한 것이다.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권위 있는 미술관이 그림을 벽에 걸었으니, 온갖 구설에 시달린 작품의 진위 여부는 명확해졌다. 미술관이 그야말로 진품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림의 몸값은 뛸 수밖에 없었다. 가격은 약 893억원으로 치솟게 된다. 당시 이 그림의 진위 여부를 조사했던 마틴 켐프 옥스포드대학의 명예교수도 “다빈치 특유의 존재감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영국 국립미술관인 내셔널갤러리가 작품 살바토르 문디를 전시했을 당시. [게티이미지] |
2013년 이 그림을 966억원에 사들인 스위스 아트 딜러인 이브 부비에. 그는 이 그림을 러시아 신흥재벌인 드미트리 리볼로블레프에게 팔았다. 그것도 웃돈을 얹고 1% 수수료까지 더한 무려 1432억원을 받았다. 아마도 부비에는 장사 수완이 좋고 머리가 비상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바가지를 씌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추후 리볼로블레프는 “미술품 가격을 뻥튀기 했다”며 부비에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작품을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많은 전문가가 진품이 분명하다는 진단을 내렸고, 내셔널갤러리에서 전시를 한 경력까지 더해졌지만 “그림 복원가가 85%가량을 그린 것”이라는 주장이 계속됐다. 오죽하면 부비에에게 그림을 산 리볼로블레프는 산 가격보다 되려 낮은 가격에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았다.
그러나 마침내, 이 그림은 크리스티의 ‘엄청난 마케팅’ 지원과 함께, 재등장하게 된다. 당시 크리스티는 이 작품을 가리켜 ‘남자 모나리자(Male Mona Lisa)’라는 별칭까지 붙였다.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경이로운 표정을 담아낸 짧은 다큐멘터리도 만들어 공개했다. 영상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등장했다. 아주 탁월한 홍보였다. 그렇게 살바토르 문디는 추정가를 훌쩍 뛰어넘어 5000억원이라는 세계 최고의 낙찰가를 기록하게 된다.
▶다빈치가 그린 그림, 맞긴 맞나?=여전히 작품의 진위 여부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다빈치가 그렸다고 하는 현존하는 살바토르 문디 그림만 해도 10여점이 넘기 때문이다. 만약 5000억원짜리 살바토르 문디가 위작이라면, 이 그림은 지구상 가장 거품이 많이 낀 작품으로 등극할 것이다.
다빈치가 그린 살바토르 문디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작품들. |
그럼 이제 그림을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은 과연 진품일까, 위품일까.
안개가 낀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 입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스푸마토 기법, 볼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묘한 미소, 부드럽지만 선명한 예수의 눈까지.
마치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Mona Lisa)’가 떠오르지는 않는가. 살바토르 문디를 그릴 무렵 다 빈치는 눈에 어떻게 초점을 맞추는지에 대한 연구에 그 어느 때보다 몰입해 있던 시기였다. 모나리자도 다빈치가 비슷한 시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 예수와 모나리자의 눈을 다시 한번 비교해 보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두 작품 얼굴 부분 확대. 살바토르 문디(왼쪽), 모나리자(오른쪽).(부분확대) [크리스티·루브르 박물관] |
이 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입술을 통제하는 근육의 움직임에 강박적으로 매달린 다빈치가 묘사한 얼굴 표정을 봐야 한다. 섬세하고 정밀한 표현력에 신비한 느낌이 더욱 강렬해진다. 다빈치는 인간과 말의 얼굴을 해부해, 인간의 입술을 움직이는 근육이 말의 콧구멍을 끌어올리는 근육과 동일한 지까지 비교한 예술가다. 이렇게 미세한 근육에 천착한 화가는 지구 역사상 다빈치가 최초일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이 작품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모나리자와 나란히 전시하는 방안이 검토된 적이 있다. 그러나 소속 학예사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않았다. 여전히 이 그림을 다빈치가 직접 그린 작품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이 그림에서 가장 의아한 부분은, 예수가 왼손에 들고 있는 수정구슬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다고 하기엔 다소 심심하게 표현된 수정구슬.(부분 확대) [크리스티] |
빛의 반사와 굴절에 강박적으로 집착한 다빈치였는데, 왜 수정구슬이 가지는 왜곡 현상을 그대로 재현해 그려내지 않았을까. 수정구술에 비친 예수의 푸른 겉옷 주름이 어딘가 모르게 밋밋하다. 상하좌우 왜곡 현상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작품이 다빈치가 그린 그림이 맞다면, 그가 예수를 부각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간결하게 그린 것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듯 어딘가 모르게 그림의 섬세함이 부족해 보이다 보니, 일각에서는 다빈치가 그의 제자가 그린 그림을 도와준 그림이라고 보는 시각이 나온다. 아직까지도 진품인지, 가품인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는 이유다.
▶ ‘세계 최고가’ 예수 그림, 결국 무슬림 손에=살바토르 문디는 한때 낙찰자가 작품을 가져가지 않았다는 소문에 휩싸였다. 그러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5000억원이 넘는 금액에 이 그림을 산 구매자, 다름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였다. 극보수적 무슬림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예수의 그림을 가지고 있다니,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이슬람에서는 예언자를 예술로 표현하는 것 자체를 금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연합] |
그가 그림을 구매한 이유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동맹관계인 아랍에미리트(UAE)를 위한 외교 선물용으로 샀다는 소문만 남아 있다. AE 문화관광부가 “아부다비에 세워진 루브르 박물관에 이 그림을 2018년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트위터를 통해 공식 발표하면서 이러한 추정은 확신이 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부다비 전시를 연기한다고 입장을 번복하면서 그림은 지금까지 한 번도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2019년 6월, 홍해에서 항해 중인 빈 살만의 요트에 이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을 봤다는 목격담만이 나왔을 뿐. 현재 이 그림이 어디에 있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정보가 잘 공개되지 않는 중동 지역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바토르 문디는 다시 자취를 감췄다. 21세기 최고의 발견이라고 불렸던 과연 이 그림은 언제 어디에서 모습을 다시 드러내게 될까. 지금도 세계 미술계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다.
이정아 기자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