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롯데콘서트홀서 리사이틀
박혜상 새 앨범 ‘숨’ [유니버설뮤직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그 역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길고 긴 역병의 시간 동안 좋아하는 사람들을 잃었다. 자꾸만 가슴엔 의심이 쌓이는 날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잘 사는 것일까’ 스스로 되뇌었다. 그 날들을 고뇌하며 그는 걸었다.
“재작년 8월, 배낭 하나 메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하루에 20∼30㎞씩 25일간 걸었어요.”
소프라노 박혜상(36)은 ‘밝음의 아이콘’이다. 자유분방한 외향형의 음악가. 그의 밝음은 수없이 겪어온 상실과 아픔의 감정 위로 스며나온 빛이었다. 박혜상에게 지난 몇 년은 ‘죽음과 삶에 대한 고민과 해답을 찾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의 이야기가 새 앨범 ‘숨(Breathe)’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번 앨범은 한국인 성악가 최초로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을 맺은 이후 낸 두 번째 앨범이다. 선정 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도이치 그라모폰은 아시아 성악가 중 유일하게 박혜상과 전속 계약을 맺었다. 지난 2020년 낸 1집 앨범 ‘아이 엠 헤라’(I AM HERA) 이후 4년 만의 새 앨범이다.
박혜상은 “(팬데믹을 보내는 동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며 “그곳에서 영적인 체험도 하고, 외로움도 강렬하게 느끼면서 ‘살면서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회복력도, 의지도 대단하구나 느꼈어요. 잠깐 내려놨을 때 세상이 주는 평안함과 감사함도 느꼈고요.”
한국인 성악가 최초로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계약을 맺은 소프라노 박혜상이 4년 만에 두 번째 솔로 음반을 냈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
이번 앨범엔 그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이 투영됐다. 그는 “이 앨범은 나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아무도 안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평안하게 해줄 수 있는 메시지를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고 했다. 처음엔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인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등을 앨범의 스토리 라인으로 만들어보자고 계획했다. 하지만 죽음을 어둡고 우울한 것으로 바라보면 삶의 힘듦이 커질 거라고 생각해 앨범의 방향을 틀었다. 그러던 중 ‘세이킬로스의 비문’을 마주하고 앨범의 주제로 정했다.
“‘결코 슬퍼하지 말라,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 세이킬로스가 아내를 잃고 묘비명에 적은 내용이라고 하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들으며 힐링이 됐어요.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하지 않게 다가오더라고요.”
앨범의 첫 곡은 작곡가 루크 하워드의 노래 ‘시편’에 세이킬로스의 노래를 넣어 편곡한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에(While You Wild)’다. 박혜상이 직접 하워드에게 의뢰한 곡이다. 앨범의 표지와 첫 곡이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그는 프리 다이빙을 배우의 수중 촬영으로 앨범의 표지를 완성했다. 물 안에서 평안에 이른 표정, 깊은 물 속에 잠긴 고요한 음성과 첼로 소리가 떠나간 사람들을 기리고, 남아있는 이들을 위로한다.
한국인 성악가 최초로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계약을 맺은 소프라노 박혜상이 4년 만에 두 번째 솔로 음반을 냈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
앨범은 저마다 죽음을 달리 바라보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18세 소녀가 감옥에서 엄마에게 쓴 편지 내용을 담은 고레츠키의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비반코스의 ‘보컬 아이스’,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의 관현악곡인 명상곡에 ‘아베마리아’ 가사를 붙인 ‘마스네: 아베마리아’, 한국 가곡인 우효원의 ‘어이 가리’를 담았다. ‘어이 가리’는 국악기 아쟁에 목소리를 얹은 곡이다.
스스로를 ‘선택적 홈리스(Homeless)’라고 부르는 박혜상은 7년 간의 ‘노마드(Nomad, 유목민)’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는 “집은 마음 속에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집과 내 침대가 생기니 이렇게 편할 줄 몰랐다”며 웃는다.
하지만 오랜만에 마련한 그의 아늑한 거처는 올해도 자주 비워질 예정이다. 올해 영국 바비컨 센터에서의 리사이틀을 비롯해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되는 모차르트 오페라 ‘코지 판 투테’의 데스피나 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파미나 역 등으로 출연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리사이틀은 오는 1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앨범을 준비하며 꼭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배웠어요. 배부름은 배고프지 않고서는 알 수 없고, 음악은 고요함 없이는 알 수 없고, 부유함도 가난함 없이는 모르는 거니까요. 기회가 주어지는 때까지 겸손하게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