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이미지. 헤럴드경제DB |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30분을 기다리라고요?"
오랜만에 붕어빵을 사러 갔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초등학교를 끼고 있는 아파트단지에 있어 저녁 무렵이면 아이들이 몰려 참새방앗간으로 불리던 곳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장사가 잘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여기서만 20년 붕어빵을 팔았어요. 이 정도 까지는 올해 유독 잘 되더라고요."
60대 정도로 보이는 가게주인 아주머니가 분주한 손놀림으로 붕어빵 틀을 뒤집으며 말했다.
외투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오들오들 기다린 끝에 붕어빵을 받을 수 있었다. 종이봉투 안에서 붕어빵 하나를 끄집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빵 꼬리를 '파삭' 한입 물었다. '앗 뜨거워!' 뜨거운 팥앙금에 화들짝 놀랐지만, 금세 달콤함이 입 안을 가득 메웠다.
"요즘 베이커리 업계 최대 이슈가 뭔지 아세요? 붕어빵이에요 붕어빵."
며칠 후 한 베이커리회사 관계자와 대화를 하던 중 그가 붕어빵 이야기를 꺼냈다. 올 겨울 들어 붕어빵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베이커리업계에서 붕어빵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을 이어나갔다.
광장시장에 위치한 유명 붕어빵가게. 사람들이 붕어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인스타그램] |
우습게만 보았던 붕어빵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그야말로 대세를 탄 모양새다.
전국에 붕어빵 반죽과 앙금 등을 납품하는 업체에 물어보니 지난해 11~12월 붕어빵 관련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배나 올랐다고 한다. 또, 납품하는 곳도 오프라인에서만 120곳에서 200여 곳으로 80곳 넘게 늘었다.
팥 앙금을 넉넉히 넣어주기로 유명한 서울 용산구의 한 붕어빵 가게는 입소문을 타 대기 시간만 길게는 1시간이 걸린다. 인기가 너무 많아지다 보니 인당 6개로 판매 수량을 제한했다. 하루에만 800개가 넘는 붕어빵이 팔린다고 한다.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
자영업자 온라인카페에는 붕어빵으로 하루 매출 80만원 이상을 올리고 있다는 인증글도 눈에 띈다. 월 200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거기다 붕어빵 마진율은 60% 이상으로 순수익만 1200만원이 넘는다. 그야말로 붕어빵 팔아 외제차를 산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시대다.
대기업들이 이런 기회를 모를 리 없다. 지난해 CJ제일제당은 '비비고 붕어빵'을 출시해 11월부터 월 1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오뚜기도 이에 질세라 이달 '꼬리까지 가득찬 붕어빵'을 출시했다. CU와 GS25 등 편의점 업계도 잇달아 붕어빵 메뉴를 선보이며, 인기에 편승했다.
"삶이 팍팍해질수록 사랑받는 것들이 있거든요. 붕어빵이 그래요.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 따뜻하고 달콤하게 배를 불릴 수 있잖아요."
베이커리업계와 붕어빵 재료 납품업체, 붕어빵 가게주인에게 붕어빵이 잘 되는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돌아오는 공통된 답이 있었다. 바로 공포스러운 '식품 물가'다. 끝을 모르고 오르는 식품 가격, 베이커리도 피할 수 없었다. 원유 가격의 상승으로 빵 가격도 크게 증가했다.
빵 이미지. 기사와는 무관. [게티이미지뱅크] |
최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A프랜차이즈 베이커리의 크림빵 가격은 1700원으로 전년 대비 21.4% 올랐다. B베이커리의 슈크림빵은 1700원에서 1900원으로 11.8% 올랐다. 그나마 크림빵은 저렴한 편에 속한다. 대부분의 빵이 2000원대를 넘어서니, 감히 빵을 사먹기가 무섭다. 두 업체가 발표한 지난해 평균 빵 가격 인상률은 6~9%대다.
붕어빵 가격도 올랐다고 해도 보통 3개에 2000원에 팔리고 있다. 1개당 700원 정도니 빵집에서 판매하는 빵과는 가격면에서 비교가 어려운 수준이다.
"팥 가격이나 밀가루 가격이 올라도 납품단가를 올리지 않은 이유는 누구나 접하기 쉬운 먹거리로 붕어빵이 남길 원하는 마음 때문이에요. 돈이 없어도 달콤하고 따뜻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게 붕어빵이 가지고 있는 힘이니깐요."
붕어빵 원재료를 생산·납품하는 한 업체 관계자가 말했다.
그의 말에 아직은 국민학생이라 불렸던 90년대의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하루 용돈 100원을 들고 동생과 함께 신나게 뛰어간 곳은 시장 귀퉁이에 있는 붕어빵 노점이었다. 마침 붕어빵 1개의 가격이 100원이었다. 그것마저 아껴 먹겠다고 구두쇠였던 동생은 붕어빵을 한번에 먹지 않고 꼬리를 한입 먹고 숨겨뒀다가 간절히 생각이 날 때 다시 찾아 한 입씩 먹곤 했다.
돈의 가치는 달라졌지만, 붕어빵을 찾는 아이들의 마음은 그때의 나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아 아련함과 함께 한편으로는 민연함이 밀려왔다.
60년대 힘든 시절, 아기에게 밥을 먹이는 여성의 모습 [뉴스아카이브] |
'붕어빵'이 한국에 들어온 건 일제강점기, 대중화가 시작된 건 6.25 전쟁 이후인 1960년쯤이라고 한다. 붕어빵은 마치 암울했던 시기, 우리를 위로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듯 역사의 굴곡점에 나타났다.
모진 세파는 어떤 대책도 세울 겨를도 없이 우리를 휩쓸었다. 그런 우리에게 붕어빵은 실날의 희망이었다. 1960년대 앙칼진 추위에 몸을 웅크린채 새벽 일을 나갔던 인부들이 하루를 마치며 한 봉지 집어든 붕어빵은 고된 하루를 잊게 해준 소중한 음식이었다.
골목 어귀 가로등불 아래에는 으레 붕어빵, 국화빵 등을 파는 풀빵장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무 리어카에 낡디낡은 파라솔을 세워놓고 가스불에 붕어빵, 국화빵을 굽는 풀빵장수 곁에는 늘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였다.
당시 붕어빵 가격이 개당 2~3원 정도였다고 한다. 20~30원이었던 국밥을 먹는 것보다 훨씬 저렴했다. 게다가 빨리 먹고 움직일 수 있어 지금으로 따지면 패스트푸드와 같은 포지션 아니었을까.
붕어빵은 먹는 이뿐 아니라 만들어 파는 상인들에게도 작은 희망이었다. 당시 생활수기에 실린 한 주부의 기고는 그때의 설움을 되새기게 한다.
"먹고 입고 산다는 일이 죽기보다 더 힘들었다. 그러나 차마 죽을수야 없었다. 날마다 신문 사회면에서는 '집단자살', '독자살인'의 활자가 내 눈동자를 자극했다. (중략) 일수돈 5000원을 빚냈다. 하루 80원씩 70일 동안 날마다 넣어줘야 하는 고리채였다. 이 돈으로 풀빵기계와 밀가루를 사서 길가로 나섰다."
그는 붕어빵을 구워 하루 품삯 정도는 벌었다고 한다. 물론 그 후로도 역경은 지속됐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붕어빵은 잠시나마 희망을 걸어 볼 수 있었던 수단이었다.
없어 못살던 시절, 이처럼 길거리로 나서 붕어빵을 굽는 풀빵 장수로 밤이면 야경을 이뤘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이가 붕어빵에 희망을 걸었는지 짐작이 간다.
대전 황금어장식품에서 판매하는 대형 붕어빵. |
그렇지만, 붕어빵을 서글프게만 볼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에서 붕어빵은 화려한 변신을 도모하고 있었다.
팥·슈크림에만 머물렀던 붕어빵도 이제는 그 틀을 깨고 다양한 맛에 도전을 하고 있다. 특히 미식(美食)을 찾는 20-30대 젊은 층에 맞춰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붕어빵이 등장하고 있다.
동작구에 위치한 한 붕어빵 가게의 '붕마카세' 사진 [인스타그램] |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한 붕어빵 가게는 '붕어빵+오마카세' 콘셉트인 '붕마카세'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가게 주인이 매달 개발한 색다른 맛의 붕어빵이 코스요리 형식으로 제공된다. 이번달에는 야끼소바·카레크림새우·콘치즈·타코야끼가 메인으로 나오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올린 초코붕어빵과 기본 팥붕어빵(또는 슈크림붕어빵)이 나온다. 단순히 다양한 맛을 제공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손님 앞에서 붕어빵을 구우며 소통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성수동 차일디쉬에서 판매하는 소금붕어빵. [인스타그램] |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는 커다란 프랑스 고메버터 한 조각을 그대로 올린 '소금빵붕어빵'을 판매한다. 대전에 위치한 황금어장식품에서는 길이 60cm, 무게 2kg에 달하는 초대형 붕어빵을 볼 수 있다. 붕어빵을 굽는 틀의 무게는 30kg에 달해 지렛대를 이용해 뒤집어야 한다. 조리시간은 약 1시간, 붕어빵 안에는 초코·슈크림·팥·피자 등 5가지 맛이 넉넉하게 들어간다.
붕어빵은 아마도 더욱 화려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쥐어 먹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의 배를 불리는 우리들의 붕어빵의 온기가 계속되기를 바라본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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