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작아진 세상…개인도 사회 변화시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시즌2 일부 장면. [넷플릭스 제공]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각자도생(各自圖生).
현재의 한국 사회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이젠 너무 익숙해진 시대의 단어다. 욕망의 관성에 따라 얄팍하게, 제각기 살아 나갈 방법을 꾀하는 사회에서 공동체 의식은 잊혀졌다. 이는 인간의 진정한 본성을 묻는 질문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뜨겁게 회자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순식간에 전 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서사만 해도 간단히 요약되지 않는가. 인간은 이타적인가 아니면, 이기적인가.
승자독식의 절망적인 현실을 버티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아마 인간은 이기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독일 최대 종합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의 과학 저널리스트 울리히 슈나벨은 이러한 명제에 과감히 고개를 젓는다. 인간은 이기적인 성향과 공동체 의식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주변 사람들의 예상 행동과 상황에 따라 자기중심적인 괴물이 될 수도 있고, 이타적인 성자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분법적인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는 신간 ‘투게더: 공동체 의식에 대한 조금 색다른 접근’에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협조적”이라며 “놀라운 점은 인간의 선한 면이 바로 ‘긴급 상황’에서 활성화된다”고 말했다. 그는 “결단력 있게 먼저 행동하는 소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비교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10~25%의 사람들만 행동해도 공동체 의식이 강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인간의 행동은 전염성이 강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세계 최대 규모의 데이터베이스(DB)를 가진 델라웨어 대학 재난연구센터에 따르면, 항공기 비상착륙 사례의 97%에서 탑승객은 침착하고 질서 있게 비행기에서 내렸다.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뉴욕 시민들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당시 구조대원들은 몰려드는 자원봉사자들을 보고 놀랐을 정도다. 2021년 7월 독일 서부에서 역사적인 규모의 대홍수가 발생했을 때도, 벨레펠트 대학에서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30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설문 조사를 했을 때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웃 연대’를 보여줬다.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도움을 주려는 마음, 배려, 공동체적 사고 능력 등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자질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저자는 “인간은 타고난 이기주의자라는 통상적인 이미지가 암시하는 것보다 훨씬 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저자의 이같은 낙관적인 태도는 우리 유전자의 깊숙히 박힌 ‘초사회성’에 근거한다. 우리가 수많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다는 상식을 제대로 인식하기만 한다면, 공동체 의식은 효과적으로 단단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지금의 세상은 정말로 작다. 세계 곳곳이 디지털 공동체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페이스북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두 사용자 간의 평균 연결 단계는 4.74명. 즉 인터넷 상에서 4~5명을 거치면 세계 어떤 지역의 사람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우리가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하다고 느껴지더라도 우리의 영향력은 상상하는 것보다 크다”며 “인간은 다른 사람의 영향을 쉽게 받기 때문에 결단력 있는 개인이 놀라울 만큼 많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고 사회 분위기를 완전히 전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를 시험대에 올려놓은 기후변화, 환경 문제, 전염병, 사회 양극화 등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한 해답도 간단하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모두가 다 ‘슈퍼스타’가 될 필요는 없다. 흥미로운 핵심은 우리가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강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한 인간의 선한 행동이면 된다. 단,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때까지 꾸준한.
투게더: 공동체 의식에 대한 조금 색다른 접근/울리히 슈나벨 지음·김현정 옮김/디 이니셔티브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