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의 기억 소환…일상적·보편적
작품 ‘뉴욕의 밤’은 가로 길이만 16m 대작
윤협, 서울 시티, 2023, 캔버스에 아크릴, 200.6x495.3㎝. [롯데뮤지엄 제공]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점과 선, 이 단순한 도상이 밤의 도시를 풀어낸다. 마치 고급 카메라로 찍은 야경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부드러운 빛의 보케(bokeh, 배경 흐림) 효과가 그림으로 구현된 듯 캔버스 속 화면은 다분히 낭만적이고 감성적이다.
“제게 도시는 다양한 에너지로 가득 찬 거대한 유기체 같아요.”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에서 만난 윤협(42)은 스트리트 아트에서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한 아티스트답게 자유분방해 보였다. 그가 자신의 창작 과정이 “스케이트 보드를 탈 때 드는 느낌과 유사하다”고 말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윤협의 그림 속 점과 선은 마치 그가 가진 리듬의 에너지를 그대로 표현하는 듯, 속박 따윈 없이 춤을 춘다. 별을 수놓은 것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는 마천루와 강에 비친 빌딩 숲의 일렁이는 야경까지. 모두가 곤히 잠든 시간 비로소 나타나는 장면이다. 그래서 윤협의 작업 세계를 마주한 도시인이라면 누구라도 저마다 자신만의 기억을 소환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그의 작업은 일상적이고, 또 보편적이다.
아티스트 윤협. [롯데뮤지엄 제공] |
롯데뮤지엄은 올해 첫 전시로 지난 24일부터 윤협의 개인전 ‘녹턴시티(Nocturne City)’를 열었다. 다만 윤협의 작업이 추구하는 방향은 비극의 여운이 오래 남는 쇼팽의 야상곡보다는 한창 청춘의 냄새를 폴폴 풍기며 감흥에 따라 트럼펫을 불던 쳇 베이커의 재즈곡과 닮았다.
그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삶을 돌아보고 여러 가지 감정을 마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단순하게 요약된다. 그는 “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즉흥적으로 연주할 때 느끼는 율동감을 이입해 점과 선을 끊어 표현했다”며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분에 따라 풀어낸 추상이었고, 여기에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상기시키며 계속해 그림을 그렸다”고 덧붙였다.
2010년 한국을 떠나 미국 뉴욕 브루클린으로 향한 윤협은 2014년 패션 브랜드 ‘락앤본’과 협업한 벽화 작업으로 인지도를 얻었다. 이후 유니버셜 뮤직 그룹, 바비 브라운, 유니클로, 베어브릭, 나이키 SB 등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해왔다.
윤협, 강가를 걷다, 2023, 캔버스에 아크릴, 200.6 x 495.3㎝. [롯데뮤지엄 제공] |
이번 전시에는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최근까지 회화, 조각, 영상, 드로잉 등 그의 20년 작업이 한데 모였다. 특히 뉴욕 맨해튼에서 뉴저지까지 연결되는 밤의 스카이라인을 담은 ‘뉴욕의 밤’은 열 폭의 캔버스로 구성, 가로 길이만 16m나 되는 대규모 파노라마 신작이다. 뉴욕 동부에 위치한 베어 마운틴에서 집까지 자전거로 타고 돌아오는 길, 조지 워싱턴 대교에서 잠시 쉬며 바라 본 맨해튼의 야경 등이 1400개의 점과 2200개의 선으로 묘사됐다. 윤협은 “도시는 말 그대로 ‘생존의 장’인데, 한발 물러나서 보니 마치 대기권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고요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윤협, 뉴욕의 밤, 2023, 캔버스에 아크릴, 200.6x1651㎝. [롯데뮤지엄 제공] |
서울의 야경을 표현한 신작 ‘서울 시티’도 한쪽 벽을 한가득 채운 대작이다. 윤협이 2022년 서울의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그림이다. 세 폭으로 이어진 긴 화면 위에는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한강과 강 양쪽으로 위치한 대로변과 다리가 담겼다. 길을 달리는 자동차와 도시를 빽빽하게 채운 건물의 모습도 빛이 반짝이는 서울 밤의 풍경을 감상적으로 물들인다.
전시는 5월 26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기준 1만8000원.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