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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작 다시 꺼낸 갤러리현대…‘60년대생’ 작가 3인의 옛 풍경 [요즘 전시]
도윤희·김민정·정주영 등 3인전
20~40대 시절 작가가 본 풍경 주제
도윤희, 천국과 지상의 두 개의 침묵은 이어져 있다, 2004. [갤러리현대]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독자적인 표현 방식을 구축한 60년대생 세 명의 여성 작가들(도윤희·김민정·정주영)이 20~40대에 그려낸 옛 풍경이 전시장에 펼쳐진다. 작가들의 과거 작품이 가졌던 의미를 되돌아 보고, 이를 현재의 관점에서 미학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서다. 작품의 생명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에디션 R’. 갤러리현대가 9개월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내놓은 첫 전시가 문을 열었다.

12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만난 작가 도윤희(64)는 “생각이 곧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생각은 세상을 재해석하는 ‘내면의 눈’과 같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 도 작가의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작품은 리넨에 연필로 드로잉을 하고, 드로잉을 뭉개듯이 오일과 바니시(광택제)를 덮어 마감을 한 작업이다.

도윤희, 밤은 낮을 지운다, 2007~2008. [갤러리현대]

특히 이 시기 그의 작품에서는 유독 시적인 요소가 강렬하게 드러난다. 작품 제목만 봐도 ‘밤은 낮을 지운다’, ‘어떤 시간은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천국과 지상의 두 개의 침묵은 이어져 있다’ 등으로, 작가는 당시 유한한 인간과 대비되는 영원한 시간성에 천착했다. 이는 문학적 요소를 배제하고 극도로 절제해온 색을 쓰기 시작한 최근작과 대비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김민정(62)은 동아시아 지역의 예술적 유산인 ‘지필묵(紙筆墨) 문화’를 서양의 추상미술 조형어법과 접목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다. 특히 그는 한지를 촛불이나 향불로 태우는 회화로 나 자신을 지우며 영원성에 이르려 했다.

작가는 “나의 작업은 전통적인 관습과 새로운 방식을 조심스럽게 이어나가는 과정이었다”며 “신작까지 변화하는 과정은 40여 년에 걸쳤는데, 전시 작품들은 ‘비움’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보따리를 풀어내는 것에 집중했을 때였던 것 같다”이라고 설명했다.

김민정, 태양 속 달, 2004. [갤러리현대]

실제로 전시장에는 이탈리아 풍경을 배경으로 한 그의 한지 화면이 걸려 있는데, 이는 수채 물감과 서예의 획이 서로 밀고 당기며 생동감을 넣는 작가의 ‘수묵 추상’ 초기 작업이다. 전시작 중에는 김 작가가 처음으로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2004년작 ‘태양 속 달(Moon in the sun)’도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는 ‘산의 작가’로 불리는 정주영(55)이 산이라는 구체적인 소재를 사용하기 시작한 초기 작품들도 걸렸다. 특히 이날 전시에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단원 김홍도의 ‘시중대’ 등 이상을 그려 넣은 진경산수화 속 일부 화면을 확대해 그린 작가의 작품들이 소개됐다. 작가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유학하던 1995~1997년 사이, 이어 한국으로 돌아와 작업한 1998년, 1999년 그림들이다.

정주영, 정서, 인왕제색(부분), 1999. [갤러리현대]

실경과 진경,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서 조형 언어가 모호하게 존재하는 당시 그림을 가리켜 작가는 “이제 막 회화를 진지하게 탐구하기 시작했던 시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결심 이후에도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 조금 막막했다”며 “그런데 풍경화는 눈으로 본 장면을 재생해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 심리가 개입해 창조해 내는 안으로부터의 세계”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내달 14일까지.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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