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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잉키넨이 선발한 스무살의 지휘자 “지휘자는 작곡가의 그림자…어두운 곳에서 더 빛나고 싶다” [인터뷰]
KBS교향악단 첫 청소년 지휘 마스터클래스
1기 수료생 이찬, 22일 ‘폴로네이즈’ 연주
“지휘 A부터 Z까지 모두 배워…제2악기도”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린 청소년 지휘자 발굴 프로젝트인 KBS교향악단의 ‘청소년 지휘 마스터클래스’의 1기 수료생 이찬[KBS교향악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 공연이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장장 15개월이 지났다. 열여덟 살이었던 이찬 군은 어느덧 스무살이 됐다. 1500명의 관객 앞에서 국내 3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KBS교향악단을 지휘해야 하는 부담보다도 아쉬움이 먼저 피어났다.

마지막 리허설을 마치고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만난 이찬 군은 “모든 시간이 소중한 경험이고 추억이었다”며 “이제 끝난다고 하니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대전예고에서 첼로를 전공하다 지휘를 꿈꾼 이찬 군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린 청소년 지휘자 발굴 프로젝트인 KBS교향악단의 ‘청소년 지휘 마스터클래스’의 1기 수료생이다. 9대 음악감독인 핀란드 출신의 피에타리 잉키넨이 직접 학생을 선발, 1년 3개월 간 수업을 진행했다. 세계적인 ‘지휘 강국’인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아카데미’ 교육 시스템을 접목, 차세대 지휘자를 발굴·육성하는 프로젝트였다.

지난 2022년 10월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이찬 군은 다섯 명을 뽑기로 했던 프로젝트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1인’이다.

그는 오디션 당시를 떠올리며 “2차 오디션에선 총 세 명이 올라왔는데 ‘적격자가 없다’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 합격을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래도 한 편으로는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며 웃었다.

사실 오디션 과정은 꽤나 복잡했다. 1차에서 전공 악기 연주를 비롯해 베토벤 교향곡 5번의 영상 테스트를 거쳤고, 2차 오디션에선 베토벤 교향곡 1번과 5번,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등을 지휘했다.

오디션부터 난관이 적지 않았다. 이찬 군은 “사실 시행착오가 좀 있었다”며 “베토벤 5번 교향곡 외에 친숙한 곡도 아니었고, 드뷔시의 곡은 변박도 있어 무척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피에타리 잉키넨 음악감독 [KBS교향악단 제공]

취임 후 ‘청소년 지휘 교육’을 강조한 잉키넨 음악감독은 첫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두 명을 선발했다. 한 명은 해외 이민으로 중도 하차했다. 그는 앞서 “핀란드 출신의 명지휘자가 많은 것은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과 폭넓은 오케스트라 지휘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며 “임기 중 한국 차세대 지휘자를 양성하기 위한 KBS교향악단 지휘 아카데미를 열겠다”고 밝혀왔다.

이찬 군은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여덟 차례에 걸친 지휘 세션을 통해 시벨리우스, 베토벤, 브람스, 스트라빈스키, 베버 등 총 9개의 곡을 익혔다. 제 2악기로 플루트 개인교습도 함께 받았다.

사실 국내의 청소년 지휘 환경은 열악하다. 이찬 군 역시 예고에 다니고 있으나 학교에선 지휘 수업이 없다. 지휘과가 설치된 국내 예고는 서울예고가 유일하다. 이찬 군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지휘에 관심이 많았고 클래식 라디오나 음반을 통해 지휘를 혼자 해보며 꿈을 키웠는데 사실 지휘를 배운 적은 없었다”고 했다. 이찬 군의 아버지는 지휘자 이운복이다.

“잠도 못자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다”는 이찬 군은 지휘자를 꿈꾸게 된 뒤 마주한 첫 수업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무래도 첫 만남이 가장 떨렸어요. 사실 수업 가기 전날 한숨도 못잤어요. 유튜브로만 보던 잉키넨 선생님을 보는 것도 떨렸지만, 언어가 잘 통하지 않을 것도 너무 걱정됐어요. (웃음) KTX를 타고 올라와 잉키넨 선생님한테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을 배웠는데,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오는 22일 지휘 데뷔를 앞둔 이찬 군의 악보 [KBS교향악단 제공]

지난 시간들은 돌아볼수록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찬 군은 “많은 사람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직접 이끌어가야 하다 보니 놓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며 “악보 표기, 악상의 변화에 따라 지휘 크기도 달라지고, 그것이 소리를 달라지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악보를 파고 들었다. 마스터클래스에서 배운 그의 악보들엔 그간 공부의 흔적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잉키넨 감독이 한국에 없을 때는 요엘 레비 전 KBS교향악단 음악감독, 성시연 지휘자를 통해 특별 수업을 받았다. 그는 “세 선생님이 성향도 다르고, 스타일도 너무나 달랐다”며 웃었다.

“성시연 선생님은 걸어나와 악장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휘의 기본이 되는 모든 것을 가르쳐주셨어요. 아직 학생이고, 마스터클래스 (학생)이나 음악을 하러 온 것이니 당당하게 하라고 하신 말씀이 특히나 기억에 남아요.”

요엘 레비와 함께 공부한 베토벤 교향곡 1번은 이찬 군에게 특히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총 8번의 지휘 세션 중 다섯 번째 수업이었다. 이찬 군은 “어느 정도 지휘 수업에 적응이 됐을 때이기도 하고 특히 좋아하는 곡이라 가장 행복했던 수업이었다”며 “요엘 레비 선생님은 지휘봉 잡는 법도 가르쳐주시고, 쓰고 있는 지휘봉까지 추천해주셨다”고 했다. 그날 수업을 마친 이찬 군은 바로 지휘봉을 사러 갔다.

이번 수업은 지휘 뿐 아니라 제2악기를 배우게 한 점이 특별했다. 시벨리우스 지휘 아카데미의 수업 방식이기도 하다. 현악기를 전공한 이찬 군은 관악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2악기로 플루트 교습을 받았다.

그는 “처음엔 ‘굳이 관악기를 배워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케스트라 안의 악기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사실 현을 다루던 이찬 군에게 입으로 호흡해 소리를 내는 악기와의 만남은 낯설었다. 그는 “처음엔 소리 내는 연습만 할 정도로 호흡을 내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KBS교향악단 청소년 지휘 마스터클래스 1기 이찬 군의 공연 리허설 [KBS교향악단 제공]

지난 15개월은 ‘지휘의 꿈’을 꾸는 이찬 군에게 위대한 ‘첫 발’과 같았다. 명지휘자들에게 수업을 받고, KBS교향악단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지휘 세션에 참여,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실제로 체험했다. 매 지휘 수업마다 영상으로 남겨 지휘자와 의견도 나눴다.

대전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향할 때마다 그는 한 뼘씩 성장했다.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하는 동안 그는 KBS교향악단의 모든 연주회를 보기도 했다. 이찬 군은 “세계적인 지휘자, 연주자들이 오시는 공연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들에게 평소 궁금한 것을 질문하며 음악적 이야기를 나눈 것이 큰 도움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처럼 지휘자의 꿈에 한 걸음 다가선 그는 오는 22일 KBS시청자감사음악회에서 70인조의 KBS교향악단과 함께 차이콥스키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중 ‘폴로네이즈’를 지휘한다. ‘귀족의 춤곡’인 ‘폴로네이즈’의 화려함과 우아함을 들려주고 싶다는 게 그의 각오다.

마지막 공연을 마치면 이찬 군은 독일 유학길에 오른다. 본격적으로 지휘를 공부하기 위해서다. 지휘자로의 길에 첫 걸음이 된 1년 여의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이찬 군은 지휘의 본질과 음악 언어의 깊이에 조금 더 다가서게 됐다. 그의 ‘롤모델’인 잉키넨 감독에게 배운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잉키넨 선생님께선 언제나 악보를 중요하게 여기셨어요. 지휘자는 작곡가의 그림자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해석도 있겠지만, 작곡가의 의도를 잘 풀어내는 것이 큰 임무라고 생각해요. ‘빛날 찬’을 쓰는 제 이름처럼, 밝게 빛나는 곳에서 더 빛나기 보다 어두운 곳에서 더 빛나는 지휘자가 되고 싶어요. 언젠가 KBS교향악단에 다시 온다면 좋겠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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