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지 작가가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에세이 ‘만질 수 있는 생각’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책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 |
“그림책을 그린 지 수십년이 됐지만 그림책 작가가 된 지는 2년밖에 안 됐어요. 그전까지 네이버프로필에 제 직업이 ‘만화가’로 돼있더라고요.(웃음)”
2022년 한국인 최초로 ‘아동 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은 그림책 작가 이수지의 말이다. 해외 출판업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그이지만 아직 국내에선 그림책 작가가 정식 직업군에 없을 만큼 인지도가 높지 않다. 그래서일까. 이 작가는 이번에 그림책 작가로서 그만의 ‘비기( 器)’를 낱낱이 풀었다.
이 작가는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첫 에세이집 ‘만질 수 있는 생각’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책은 서양회화를 전공했던 그가 어떻게 북 아트를 공부하게 됐고, 이어 드넓은 그림책이라는 세계에 빠져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는지, 또 어떤 삶의 과정에서 작품들이 탄생했는지 그의 치열했던 삶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했다.
이 작가는 그림책이 아닌 에세이집을 낸 이유로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지만 작가가 많은 얘기를 해줄수록 작품의 세계가 더 풍부해진다는 믿음이 있다”며 “제가 지금 (그림책 제작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서 책을 냈다”고 했다.
이수지는 한국과 영국에서 회화와 북 아트를 공부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림책을 펴낸 작가다. 책의 물성을 이용한 작업과 글 없는 그림책 형식으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해졌다. 대표작에는 ‘여름이 온다’,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 ‘거울속으로’ 등이 있다.
이 작가가 그림책의 세계에 입문한 이유에 대해 “말 없는 그림책이 내게 말없이 말 걸어오는 내밀한 세계를 알아버렸다”며 “이것은 완전히 다른 언어이며, 이것이 바로 나의 언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내 안의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목소리를 그림책에서 찾았고, 이를 갖게 되던 순간 매우 기뻤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에게 그림책은 ‘아이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모든 이를 위한 책이다. 그는 “그림책은 다루는 주제가 워낙 넓고, 살면서 느끼는 중요한 진실 같은 것을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단순하고 명징하게 전달한다”며 “아직 이 세계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계기가 없었을 뿐 (계기가) 있으면 나처럼 빠져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림책을 읽는 어른은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자신이 그 책에 빠진 경우가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이가 처음 접하는 책이 바로 그림책이고, 책과의 만남은 부모나 선생님 등 어른이 책을 읽어주며 시작된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어떻게 책을 읽어주는 게 좋을까. 그는 어른이 먼저 즐기기 시작한다면 아이도 책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유튜브, 숏폼 등 다양한 볼거리로 책이 소외되는 현상에 대해선 “매체의 힘이 너무 강하기에 모두가 이끌리고, 나 역시 그렇다”면서도 “책이 얼마나 즐거운 경험인지를 알게 된다면 매체에 잡아먹히지는 않을 거다. 그 즐거움을 알려주는 게 어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K-출판의 세계화에 대해선 “그림책 작가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책을 알릴 필요가 있지만 사실 언어적 문제 때문에 저어하는 경우가 많다”며 “번역이나 통역 등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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