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테너 매력 드러낼 최고의 작품
흔치 않은 영어 오페라의 초연 무대
“늘 배울게 있어 길 찾는 여정같은 작품”
국립오페라단 ‘한여름 밤의 꿈’ 연습 현장에서의 제임스 랭 [국립오페라단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같은 카운터테너이나 두 사람의 목소리는 정반대다. “어릴 때부터 워낙 목소리가 높았다”는 장정권(40). 그래서인지 그는 맑고 고운 음색의 카운터테너다. “오보에 연주자의 삶과 디바의 삶을 고민하다” 후자를 택한 세계적인 카운터 테너 제임스 랭(46)은 남성보단 높지만, 적당한 중음이 섞여 오묘한 아름다움을 가졌다. 이 두 사람이 한 역할을 맡았다. 영어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을 통해서다.
“‘한여름 밤의 꿈’은 카운터테너에겐 꿈의 무대예요. 카운터테너 역할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이자 쉽지 않은 작품이죠. 이 오페라가 한국 관계들에게 신선한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해요.” (장정권)
국립오페라단의 신작 ‘한여름 밤의 꿈’(4월 11~14일, 예술의전당) 개막을 앞두고 만난 카운터테너 제임스 랭과 장정권은 이 작품에 대해 “20세기 현대 오페라를 경험할 기회이자, 카운터테너의 매력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여름 밤의 꿈’은 여러모로 ‘최초’ 제조기다. 베르디와 푸치니 오페라가 주류를 이뤘던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등장한 첫 ‘영어 오페라’이자, 이 작품의 ‘스페셜리스트’인 제임스 랭의 한국 데뷔 무대다. 익숙한 오페라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작품인 것이다.
오페라는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을 바탕으로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1913~1976)과 그의 동성 연인 피터 피어스(1910~1986)가 대본을 썼다. ‘요정의 왕’ 오베론과 그의 아내 티타니아, 또 다른 젊은 커플이 처음 본 상대와 사랑에 빠지는 ‘마법의 꽃’으로 인해 벌어지는 한낱 꿈같은 소동을 담은 이야기다.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 연습 현장 [국립오페라단 제공] |
제임스 랭은 ‘한여름 밤의 꿈’만 여덟 번째다. 영국에서 6번을 했고, 지난 1월엔 오만에서 이 무대에 섰다. 한국에서의 공연이 끝나면 영국에서 9번째 무대도 기다리고 있어 올해만 해도 ‘한여름 밤’의 꿈을 세 번이나 공연한다. 모두 오베론 역할이다.
랭은 “오베론의 음역대는 대부분 카운터테너보다는 낮은 편”이라며 “이 작품이 애초 현대 카운터테너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프레드 델러(19122~1979)의 목소리에 맞춰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장정권은 “오베론 왕의 낮은 음정을 잘 소화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초연 이후) 브리튼은 오베론 파트의 음역대를 높여 다시 작곡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생각을 이루기 전 세상을 떠났어요. 이 작품을 다시 썼다면 어땠을까도 싶어요. 여러 번 해봐 잘 아는 작품이긴 하나, 할 때마다 배울 점이 생기는 오페라예요. 작품을 만나는 과정이 길을 찾아가야 하는 하나의 여정 같아요.” (제임스 랭)
‘오베론 스페셜리스트’인 랭은 교과서 그 자체다. 장정권은 “제임스는 한국인이 판소리를 하는 것처럼 자기 나라 음악을 하는 거다 보니 그를 보며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다”며 “노래하는 사람에겐 텍스트가 제일 중요한데 뉘앙스에서 배울 점이 정말 많다. 자연스럽게 호흡하고 유연한 데다, 오베론을 정말 잘 이해하고 있어 작은 터치나 손짓도 멋지게 소화한다. 볼 때마다 너무 멋져 감탄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 연습 현장에서의 장정권(오른쪽)과 김동완 [국립오페라단 제공] |
장정권의 이야기에 랭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그러더니 “사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노래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나 역시 이탈리아인 앞에서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는 걸 생각해하면 당연히 쉽지 않다”며 “문장이나 단어들을 갖고 놀면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한국 배우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통 영국 오페라에 영국 성악가이자 ‘한여름 밤의 꿈’ 스페셜리스트가 출연하나, 정작 연출진은 독일 출신이다. 볼프강 네겔레가 연출를 맡았고, 펠릭스 크리거가 지휘를 맡았다.
랭은 “각 프로덕션마다 연출의 비전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 오페라”라며 “다만 ‘한여름밤의 꿈’의 경우 매 프로덕션을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브리튼의 음악에 충실하고 진실하게 접근했다. 이번 작품에서 만난 볼프강 네겔레 연출 역시 자신의 아이디어와 비전을 가지고 있지만, 독단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작품의 묘미는 여성 음역대(알토, 메조, 소프라노)를 소화하는 카운터테너와 여성 소프라노의 맞대결이다. 장정권은 “카스트라토의 시대가 지나고 카운터테너들이 나오면서 그들이 다시 주목받았다. 카운터테너의 음색이 일반적인 파트와 섞였을 때 굉장히 아름다운 하모니가 나온다”며 “이 작품에선 영웅적 역할인 왕을 카운터테너가 맡아 굉장히 미묘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다”고 말했다.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 연습 현장 [국립오페라단 제공] |
한국에선 카운터테너가 주인공인 무대는 흔치 않다. 국립오페라단이 카운터테너가 나오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도 2016년 비발디 ‘오를란도 핀토 파초’ 이후 8년 만이다.
장정권은 “런던에는 각 학교마다 카운터테너가 있고 카운터테너들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었다”며 “한국에서 카운터테너로 오페라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랭은 “영국에선 카운터테너가 꽤 자리잡은 전통”이라며 “영국엔 메인 컬리지라고 할 수 있는 음대가 총 8개가 있는데 1999년, 2000년만 해도 카운터테너는 4명뿐이었지만, 지금은 각 대학마다 2명씩 있다”고 말했다.
카운터테너가 늘고 있다는 것은 오페라 레퍼토리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의미다. 특히 이들의 음색을 필요로 하는 헨델 시대의 음악이 많이 연주된다는 것이라고 랭은 설명했다. 그는 “바로크 음악을 많이 연주하는 만큼 그것을 잘 부를 수 있는 싱어의 필요성이 커지고, 그만큼 좋은 싱어도 많이 나오게 된 것 같다”며 “한국은 지금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는 시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여름 밤의 꿈’은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국내 오페라 관객에게도 새로운 경험이다. 랭은 “카운터테너가 나오는 영어 오페라를 만날 기회가 적어 낯설게 느낄 수 있지만, 인간적인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많이 웃게 될 것”이라며 “‘한여름 밤의 꿈’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며 기대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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