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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채 상병 특검, 공수처 수사 지켜보고 도입하는 게 순서

윤석열 대통령이 ‘해병대 채 상병 특별검사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미 예정된 수순이다.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야당이 채 상병 특검법을 강행 처리하자 윤 대통령은 9일 기자회견에서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바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를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윤 대통령 탄핵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정국이 또 한 차례 격랑에 휘말리는 모습이다.

국민의 67%가 채 상병 사건 특검을 원한다고 하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우선 특검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특검은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도입하는 게 일반적이다. 또 수사의 독립과 공정성이 현저하게 위협받는다고 판단되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 관련 수사는 공수처와 경찰이 본격 진행하고 있다. 공수처는 21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을 불러 조사를 벌였다. 다소 늦어지고 있지만 수사는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이다. 오동운 공수처장 후보자 역시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원칙대로 수사’를 공언했다. 공수처 수사를 지켜보고 결과가 미진하거나 의혹이 있다면 특검을 도입해도 늦지 않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고 ‘봐 주기 의혹’이 있다면 그 때는 윤 대통령 자신이 특검을 먼저 요구하겠다는 뜻을 공개 피력하기도 했다.

통상적인 특검 관례에도 맞지 않는다. 특검은 여야 합의로 도입하는 게 지금까지의 관례다. 그런데 채 상병 특검은 민주당이 수의 힘을 앞세워 단독 처리했다. 그러다 보니 핵심 내용도 특정 정파에 기울어졌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특검법에는 대한변협이 특검 후보 4명을 추천하면 이 가운데 2명을 민주당이 대통령에게 추천하게 돼 있다. 이대로 특검이 진행된다면 정파성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욱이 채 상병 수사를 주도하고 있는 공수처는 문재인 정부 당시 민주당이 앞장서 만든 독립 수사기구다. 그런데도 공수처를 믿지 못하고 특검을 도입하겠다면 자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은 “6월 개원되는 22대 국회 1호 법안은 재추진되는 채 상병 특검법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지금 상황이라면 윤 대통령은 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 거대 야당의 입법 강행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악순환이 남은 임기 3년간 계속된다면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특검을 정치화해 윤 대통령 흔들기 수단으로 여긴다면 민주당 역시 그 역풍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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