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의 한 제지 공장에서 설비 점검을 하다가 숨진 10대가 생전에 기록했던 수첩이 공개됐다. |
[헤럴드경제(전주)=서인주 기자] 전북 전주의 한 제지 공장에서 설비 점검을 하다가 숨진 10대가 생전에 기록했던 수첩이 공개됐다.
24일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이날 A(19)씨의 죽음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수첩 내용을 공개했다.
A씨는 지난 16일 오전 9시 22분께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의 한 제지공장 3층 설비실에서 홀로 기계 점검을 하다가 숨졌다.
당시 혼자 작업을 하러 간 그와 연락이 닿지 않던 작업반장이 기계실에 갔다가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A씨를 발견했다.
A씨는 지난해 3개월간 이 공장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을 한 뒤 학교를 졸업한 뒤 올해 정규직으로 채용돼 수개월째 근무 중이었다.
공개된 A씨의 수첩에는 자기 계발 계획과 공부 흔적 등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A씨는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정하기', '경제와 언어 공부하기' 등 큰 계획을 적었고, 월급과 상여급을 계산해 매달 저축할 액수 등을 구체적으로 메모했다.
오전 근무와 심야 근무 등 근무표에 따라 '오후 4시 책 읽기', '오후 6시 운동' 등 매시간 할 일들을 촘촘히 계획해두기도 했다.
펄프의 종류와 약품 등 업무에 대한 메모와 '3∼6개월 안에 모든 설비 공부', '파트에서 에이스가 되겠음' 같은 목표도 적혀있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착실하게 현장 일을 열심히 하던 청년이 일을 하다가 숨졌다"며 "사고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야 할 사측은 지난 주말 사고 현장을 물로 청소하는 등 훼손했다. 원인 규명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통상 2인 1조로 근무해야 할 현장에 A씨가 혼자 근무하고 있었던 점 등을 미뤄 안전 매뉴얼이 정확히 지켜졌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유족 측은 지난 20일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씨는 사고 후 1시간가량 방치됐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며 "종이 원료의 찌꺼기가 부패하면서 황화수소 등 유독가스가 발생할 수 있는 현장이었는데도 왜 설비실에 혼자 갔는지, 2인 1조 작업이라는 원칙은 왜 지켜지지 않았는지 알고 싶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제지공장 측은 유독가스 등 위험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제지공장 관계자는 "A씨는 가동 전 설비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순찰 중이었고, 이 업무는 2인 1조가 필수는 아니다"라면서 "사고 다음 날 고용노동부 등이 합동 조사를 했는데 사고 지점의 유해가스의 농도는 0%였다"고 설명했다.
si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