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과학/피터 H. 킴 지음 강유리 옮김/ 심심 |
#1. 2018년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돌체앤가바나는 중국인 여성이 피자와 파스타를 젓가락으로 우스꽝스럽게 먹는 모습의 영상을 광고로 내보냈다.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으로 공동 창립자 겸 디자이너인 스테파노 가바나가 “중국은 똥 같은 나라”라고 말한 사실이 공개됐다. 이 회사 수장들은 직접 나서 “깊이 반성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두루뭉술하게 사과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패션쇼는 취소됐고, 백화점에서 쫓겨났으며, 불매운동의 대상이 됐다.
#2.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영화배우 시절 여섯 명의 여성을 성추행하고 모욕한 혐의로 고발됐다. 당시 그는 “깊은 유감을 느끼고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는 사과 직전에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때때로 잘못된 행동을 했습니다. 소란스러운 영화판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었던 실수였고, 당시에는 장난이라고 여겨서 한 행동이었습니다. 이제 돌아보면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체앤가바나는 신뢰 회복에 실패했고 슈워제네거는 무너진 신뢰를 되돌렸다. 이 둘은 무엇이 달랐던 걸까.
간단히 말해, 슈워제네거는 대중이 자신의 성추행 사건을 도덕성 문제에서 역량 문제로 새롭게 바라보도록 ‘리프레이밍(Reframing)’했다. 그 어떤 말로도 성범죄를 정당화할 순 없지만 어쨌든 그는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간파했다. 역량 문제는 사과가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되지만, 도덕성 문제는 사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신간 ‘신뢰의 과학’은 신뢰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훼손되며, 신뢰를 회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조직행동학자인 저자는 역량과 도덕성, 이 두 가지를 신뢰를 결정짓는 두 개의 강력한 요소로 정의했다. 신뢰가 무너지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역량이나 도덕성 문제 중 하나라 어떤 유형으로 보여지는 지에 따라 그에 맞는 회복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면 역량 기반이 부족하다고 인지하게 되면, 사람들은 유죄 확정 여부보다 신뢰 위반자가 잘못을 후회하는지, 앞으로 비슷한 잘못을 피하려고 노력할 것인지에 대한 신호에 더 쏠린다. 따라서 사과가 효과가 있다. 하지만 도덕성을 위반했다고 판단되면 사람들은 유·무죄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에 따른 뉘우침이나 속죄의 신호는 대부분 무시한다. 따라서 사과가 별 소용이 없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
저자는 “돌체앤가바나의 사과가 실패한 것은 페이스북의 경우처럼 회사가 대중의 핵심 우려를 해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만 한다”고 전한다.
실제로 돌체앤가바나는 가바나가 중국에 정말로 악감정을 품고 있는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데 소홀했고, 페이스북은 중대한 잘못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그 무엇도 보증하지 않았다.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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