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단이 제33회 파리 올림픽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1976년 몬트리얼 대회 이후 최소 규모의 선수단으로도 금메달만 두자릿수의 기록적인 성적을 냈다. 역대 최연소 금메달리스트인 16세 반효진(사격)부터 ‘양궁 3관왕’의 32세 베테랑 김우진까지, 안세영이 압도적인 기량으로 지배한 배드민턴부터 안바울이 투혼으로 체급열세를 극복한 유도까지 우리 선수들은 종목과 메달색깔을 뛰어넘어 올림픽 기간 내내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신유빈(탁구), 오상욱(펜싱), 김예지(사격), 허미미(유도)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가 선수 한명 한명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줬고, 독보적인 서사를 써내려갔다. 미국의 체조 3관왕 시몬 바일스가 유니폼에 한글로 새긴 글귀처럼 ‘누구든’ 스타였고 ‘모두가’ 영웅이었다.
이번 대회는 ‘하면된다’에서 ‘공정과 혁신’으로 우리 사회 시대정신이 전환됐음을 다시금 일깨웠다. 10연패에 성공한 여자 단체전을 비롯 5개 전종목을 석권한 양궁이 대표적이다. 오로지 성적에만 근거한 선발방식과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첨단의 훈련이 세계를 놀라게 한 비결이 됐다. 잡음없이 투명한 운영과 선수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한 대한양궁협회는 스포츠행정의 이상적인 모델로 꼽혔다. 반면, 올림픽 진출이 40년만에 무산된 축구협회와, 안세영의 폭로로 논란에 휩싸인 배트민턴협회는 국민적 비판과 의구심의 대상이 됐다.
이번 대회 주축인 10대 후반~30대 젊은 선수들의 모습은 그들이 기성세대에 익숙한 ‘성과주의’와 완전히 결별했음을 보여줬다. 선수들은 오로지 결과로서의 메달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모든 과정을 즐겼다. 져도 웃고, 이겨도 경쟁자에 경의를 보내고, 넘어진 상대에겐 손을 내밀며, 승패에 관계없이 관중들과 환호와 박수를 함께하는 행동은 ‘메달강박’에선 나올 수 없었다. 개인의 성취를 통해 공동체의 행복에 헌신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혹시 국가의 명예나 특정종목 협회의 성과라는 이름으로 묶어두려는 데서 스포츠계 갈등과 부조리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이번 기회에 되돌아볼 일이다. 청년 중심인 구성원들의 열망과 기성세대가 주축인 스포츠행정 권력의 ‘부조화’가 근본적인 문제는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스포츠는 정치·경제 등 사회적 과정의 결과이자 그것을 지배하는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이번 올림픽은 청년들에 공정한 기회를 열어주고, 새 세대와 시대 변화에 맞는 혁신을 이뤄야만 세계를 선도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공정과 혁신만이 공동체의 통합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단지 스포츠계를 넘어 모든 정치, 행정권력이 명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