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개막일인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프리즈는 ‘아트바젤’과 세계 아트페어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기업이다. 올해 프리즈서울에는 국내외 110여 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임세준 기자

갤러리들이 자정까지 문 열고 파티를 연 ‘삼청 나이트’가 한창이었던 지난 4일 오후 10시께,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 앞 공터. 푸른색과 보라색의 불빛이 아스라이 스며들어 불안을 고조시키고, 멜로디를 알 수 없는 추상적인 소리가 울려 퍼지자 상모와 하얀 옷을 입은 춤꾼들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이는 올해 ‘프리즈 서울’이 처음 선보이는 라이브 프로그램으로, 한국 작가 제시 천의 ‘언어 해체’ 탐구 작업 퍼포먼스. 300여 명에 달하는 20~30대 관람객이 무대 주위를 에워싸면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인근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작가 듀오인 김치앤칩스의 설치 작품 ‘또 다른 달’을 배경 삼아 공연예술가 벤딕 이스케의 색소폰 연주가 펼쳐졌다. 그곳에는 200여 명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국 미술계의 시계추는 9월 첫째 주에 맞춰져 있어요. 모두가 이 시기를 위해 눈에 불을 키고 작정하고 달리는 거죠.”

지난 4일 막을 올린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는 서울을 미술인의 한판 멋진 무대로 꾸미는 구심점이 됐다. 특히 올해에는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가 함께 개막하면서 ‘서울 아트위크’에 대한 미국, 프랑스, 영국, 스위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아랍에미리트(UAE), 홍콩, 중국, 싱가포르 등 40여 개국 미술관과 재단의 큐레이터, 컬렉터 등의 발걸음은 예년에 비해 더 한국으로 쏠렸다.

제임스 코흐 하우저앤워스 파트너는 “올해는 비엔날레 덕분에 아트페어에 대한 관심과 에너지가 더욱 폭발적이었다”며 “서울의 미술 환경은 정말 활기차고 역동적이라, 그 속에서 함께하는 게 정말 즐겁다. 프리즈 서울에 큰 기대를 했는데 그 기대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3회 차를 맞은 프리즈 서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변화했다. 서울시와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천국제공항, 광주비엔날레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관광공사, 서울교통공사 등 정부와 공공기관이 작정하고 키아프리즈를 전격 밀어주면서 넓어진 한국 미술계의 저변을 실감하게 했다. 문체부·LG전자 주최 ‘미술인의 밤’, 예술경영지원센터 토크 프로그램 등 부대행사가 그 일환이었다.

다만 세금까지 써가며 해외 상업 아트페어 브랜드인 프리즈와 소수의 부자들을 상대하는 톱급 갤러리의 사업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한국 미술을 ‘하나의 상품’으로만 취급하고 성급하게 정체성을 결정하려는 떠들썩한 ‘한국식 행정’이 예술의 다양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서울과 미국을 오가며 왕성한 작업을 하는 한 작가는 “‘무자비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방적이다”며 “작가, 큐레이터 등이 영문도 모른 채 한자리에 모여 아트페어 ‘파생상품’에 등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미술인의 밤에서 만난 한 시립미술관장도 “문체부가 초대해서 왔는데, 사실 어떤 자리인지 여전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막강한 체급을 자랑하는 세계 최정상급 갤러리들이 프리즈 서울에서 보여준 전략은 ‘안전형’이었다. 거장이면서도 시장에서 판매가 잘 되는 작가들의 비교적 낮은 가격대의 작품을 라인업한 것이다. 니콜라스 파티, 조지 콘도 등 작품이 각각 33억, 26억원에 새 주인을 만났지만 여기까지였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대형 작품으로 눈길을 끌게 한 가고시안이지만 내부 부스는 최근 수년 사이에 떠오르는 작가인 메리 웨더포드, 로렌 할시, 이시다 테츠야, 데릭 애덤스 등 컨템포러리 작가들의 10억원 미만 신작에 방점을 찍어 채웠다. 하우저앤워스가 가져온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이 ‘The Family(2007·약 2억원 추정)’라는 점도 대표적이다.

부르주아는 생존 작가 중 가장 비싼 몸값을 가진 여성 작가로 그의 주요 작품은 100억원대를 넘어선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는 작가다. 하지만 하우저앤워스가 한국을 위해 선택한 작품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저가에 속하는 작품이다. 톱급 갤러리들이 파블로 피카소, 장 미셸 바스키아, 프란시스 베이컨 등 교과서에 나올 법한 수백억원대 미술사 거장의 작품을 내 걸었던 1회차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오히려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 판매가 두드러졌다. 그토록 열망했던 한국 미술의 세계화가 속도를 내면서 컬렉터의 자금 사정을 고려한 어느 정도 익숙한 국내 작가들의 수천만원대에서 수억원대까지의 작품이 키아프리즈에서 대거 소개됐기 때문이다.

PKM은 유영국의 회화 작품을 20억원에 판매했다. 페이스는 이우환의 회화 작품을 16억원에 판매했다. 타데우스 로팍은 이불과 이강소의 작품을 각각 2억5000만원에 판매하는데 성공했다. 글래드스톤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인 아니카 이의 조각 2점(각 약 2억원대)을, 리만머핀은 김윤신, 이불, 서도호 등 작품을 판매했다. 국제갤러리의 양혜규, 문성식, 이희준 등 작품도 새 주인을 만났다. 갤러리현대는 전준호의 작품 7점을 판매했다. 조현화랑에서는 이배 작품 10점을 각각 7500만원에 판매했다.

반면 키아프 서울의 위상은 전년보다 한결 높아졌다는 평이 대다수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구성으로 솔로 부스를 운영하거나 100호짜리 대작을 대거 선보이면서다. 프리즈 서울에서 유명 작가들의 감각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실험적인 작품이 많았지만, 오히려 키아프 서울에서는 신인이나 중견 작가의 견고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 눈에 띄었다.

실제로 키아프는 아트 오브 더 월드 갤러리(휴스턴), 다이 갤러리(프랑크푸르트), 선다람 타고르 갤러리(뉴욕), 페레스 프로젝트(베를린), 카를 코스티알(런던) 등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갤러리가 처음으로 합류했다.

한편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이번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에는 VIP와 일반 관람객이 각각 7만여 명, 8만2000여 명 방문했다. 누적 방문 기록을 제외한 실제 방문객으로, 예년과 비슷한 수치다. 이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