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파’ 모디 총리 집권 3기 시작…비동맹 외교 계속
공고한 민주주의·무한한 성장동력…中 대체시장 부상
“양자 상호 방문·정상회담 등 적극적 정상외교 필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인도 뉴델리의 정상회의장인 바라트 만다팜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한·인도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삼국유사-가락국기’에 따르면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왕옥은 서기 48년, 16세의 나이에 인도에서 바닷길을 건너가 김해 김씨의 시조인 가락국 김수로왕과 결혼했다. 2000년의 교류 역사를 가진 한국과 인도는 반세기를 넘어 올해 수교 51주년을 맞이했다.
헤럴드경제는 14대 주인도대사를 지낸 이준규 인도포럼 회장과 16대 주인도대사를 지낸 신봉길 한국외교협회장을 각각 만나 지난 50년의 양국 관계를 돌아보고 향후 50년을 위한 방향을 짚어봤다.
14억4171만명, 중국(14억2517만명)을 넘어선 세계 제1의 인구. 평균연령 28.7세인 젊은 나라.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과 안정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며 지난 10년 간 연 평균 6%대의 고성장을 이어오는 세계 5위의 경제대국 인도. 전문가들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맏형인 인도와 경제는 물론, 안보의 측면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외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인도 수교 51주년…획기적으로 반전시켜야=인도는 1950년 6·25전쟁 시 의료지원 부대를 파견한 파병국이다. 아그라 내에 위치한 60공정 야전병원에는 6·25 기념 전시실이 남아있다. 인도는 1953년 6월 타결된 정전협정상 ‘중립국 송환 위원회’ 의장국을 역임했고, 포로감시여단을 파병하는 등 유엔과 함께 전후 처리에 참여했다. 1973년 12월 외교관계를 수립한 양국은 2015년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국빈 방한을 계기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이 전 대사는 “양국 간 긴 교류의 역사 중 서로 앙금이 있는 적이 없고 굉장히 친근한 인식이 있다”며 “걸림돌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인도에 대한 막연한 편견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국 모두 교역액이 1조달러가 넘는 무역 대국인데, 양자간 교역액은 300억달러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며 “양국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비하면 조금 더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이준규 전 주인도대사가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자택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친한파’ 모디 총리, 집권 3기 시작=모디 총리는 올해 총선에서 3연임에 성공해 10년에 이어 추가 5년의 임기를 시작했다. 다만 집권당인 인도인민당(BJP)은 예상과 달리 단독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모디 총리와 경쟁했던 정치 명문가 출신의 라훌 간디 전 인도국민회의(INC) 총재가 2014년 이후 공석으로 남아있던 인도 의회 공식 야당 지도자에 올랐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신 전 대사는 “모디 총리와 집권 여당, 야당에도 좋은 조금은 특이한 결과”라며 “집권당이 단독 과반을 하지 못하면서 연립 정부를 구성했는데, 국민들이 여전히 모디 총리에 대해 상당한 지지를 보이면서도 일방적인 독주를 막은 것”이라는 현지의 반응을 전했다.
모디 총리에 대한 인도 국민들의 지지는 강한 리더십을 통한 경제 성장에서 기인한다. 모디 총리는 첫 집권 당시 ‘클린 인디아’ 혁명을 통해 5년간 전국에 화장실 1억개를 설치했다. 또한 1억 가구에 은행통장을 개설해 국가지원금의 투명한 지급이 가능해져 부정부패를 막았다.
모디 총리가 고향인 구자라트주(州)의 총리로 재직할 당시 자동차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인도의 대표 대기업인 타타그룹의 회장 라탄 타타를 직접 설득한 일화는 유명하다. 구자라트주는 인도의 경제적 중심지로 떠올랐고, 타타그룹은 반도체 제조 공장, 배터리 저장 공장 건설도 준비하고 있다.
신 전 대사는 “현재도 고속도로, 철도 항만 사업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다”며 “지금도 하루에 10㎞씩 고속도로가 연장되고 있고, 시속 200㎞ 되는 철도가 7개가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사우스’ 맏형 인도=신냉전 질서에 접어들면서 글로벌 사우스가 전략적으로 중요해지면서 미국과 러시아 등 전세계가 인도를 주목하고 있다. 인도의 외교가 세계 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는 것을 뜻한다. ‘비동맹, 비가담’ 전통의 인도 외교의 방향성이 주목을 받는 이유다.
모디 총리는 2022년 중국을 견제하는 성격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가입했고, 쿼드(Quad·미국, 인도, 호주, 일본 4자 안보대화) 정상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3선 임기를 시작한 직후인 지난 7월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났고, 8월에는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전문가들은 인도의 외교 원칙이 변한 것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신 전 대사는 “인도는 과거 비동맹 외교의 전통에 자부심이 있고 국력도 있는 만큼 독자외교를 하고 있다”며 “인도는 ‘다자간 연맹외교’(multi alignment)로, 어느 나라와도 군사동맹은 하지 않겠다는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인도는 절대 어느 한쪽에 서지 않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어느 나라도 무시하지 못한다”며 “서로 인도를 끌어들이려고 하고, 이 사이에서 인도는 국익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대사는 “국력 신장과 더불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인도로서는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소극적 외교가 아니라, 인류의 공통선도 고려하는 적극적 외교로의 전환을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글로벌 사우스의 맏형격인 모디 총리가 국제 문제에서 실익만큼 명분에도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신봉길 한국외교협회장이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외교협회 집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안정적 민주주의·무한한 성장동력…中 대체시장 부상=세계가 손을 내미는 인도는 우리에게 경제·안보적 측면에서 중요한 파트너국이다. 2014년 취임 후 ‘적극적 동방정책’(Act East Policy)을 펴고 있는 모디 총리는 경제발전 모델로 한국과의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 이는 양국 관계 발전에 중요한 동력이다.
이 전 대사는 “현재 GDP 규모 세계 5위인 인도는 당분간 연 6~8%의 고속 성장을 유지해 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며 “모디 총리의 적극적인 경제정책이 우리 기업들에 많은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고, 이미 많은 기업이 인도에 진출해 있거나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기업에 만약 해외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면 인도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고 싶다”며 “인도가 제공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공고한 인도의 민주주의 체제는 중국과 차별화된 강점으로 꼽힌다. 14억 인구의 인도는 약 7억명의 유권자가 6주에 걸쳐서 100% 직접 전자투표를 실시한다. 북부 히말라야 해발 4237m에 위치한 라다크 지역의 12명 유권자를 위해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은 산소통을 메고 산을 오른다. 코끼리떼가 우글거리는 밀림지역에도, 지뢰가 깔린 반군 점령지도 지나 투표함이 찾아간다. 이렇게 인도 전역에 100만개의 전자투표함이 설치되고, 치열한 경쟁 후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성숙한 선거문화가 있다.
신 전 대사는 “인도의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 정도(2023년 기준 2612달러)인데, 1만달러까지 계속 발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내각책임제 국가이면서도 대통령제보다 훨씬 더 안정된 체제가 유지되고 있고, 모디 총리의 절대적인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확보한 정치적 안전성이 인도에 진출하려는 기업에도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인도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에 다른 정치와 법체계, 문화적 차이가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현지 진출을 고려하는 기업에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에 이 전 대사는 “인도의 비즈니스 환경이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어렵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인도만의 독특한 면이 많이 있으므로 진출하기 전에 철저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며 “우리 기업이 인도에서의 성공을 위해서는 믿을만한 인도 기업과의 합작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도와 합작한 외국 기업의 성공 사례로 인도의 자동차 제조사 마루티 스즈키를 꼽는다. 1971년 설립된 국영자동차제조사인 마루티 우디요그가 1981년부터 일본 자동차 제조사인 스즈키와 합작법인을 조직해 현지 생산을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판매량 기준으로 인도 최대의 자동차 제조사로 내수시장에서 절반 이상의 점유율로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전 대사는 “우리에게 어렵다면 다른 나라에도 어려운 것이고, 남들보다 잘하면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메리트가 되는 것”이라며 “오히려 쉬워 보이는 것에 함정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인도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환영행사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 |
▶양자 방문 추진·적극적 정상회담 필요=두 전문가는 한국이 인도와 보다 적극적인 외교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신 전 대사는 “인도는 세계 4~5위의 군사력을 보유한 핵무장 국가이자 세계 최초로 무인우주선이 달 남극 연착륙에 성공하는 능력을 가졌다”며 “아시아에서 중국이 신경 쓸 수 있는 나라는 인도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국의 군사 전문 분석 기관인 IHS에서 발표한 2024년 글로벌 파이어파워(세계 군사력 지수)에서 중국은 0.0706으로 3위, 인도는 0.1023으로 4위, 한국은 0.1416으로 5위를 기록했다.
이 전 대사는 “한-인도 양국 모두 쉽지 않은 나라 중국과 이웃하고 있기 때문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공통의 이익을 위해 다양한 협조를 할 수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인도 방문을 조속히 성사시키고, 다양한 다자 무대에서의 양자 정상 회담도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ilverpape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