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만 마리 표본, 전쟁 등 거치며 불타…현재 국내에 32점뿐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일제강점기 한반도 전역을 다니며 나비를 채집해 ‘나비박사’로 알려진 석주명 선생의 표본이 90년 만에 국내로 돌아온다.
국립생물자원관은 25일 일본 규슈대에서 석 선생이 1930~1940년대 수집한 곤충 표본 120여점을 기증받는다고 24일 밝혔다.
그가 영국 왕립 아시아학회 한국지회 의뢰로 ‘조선산 접류 목록’을 펴낸 것은 식민지 학자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서를 내놓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석 선생은 한국산 나비를 248종으로 정리하고 동종이명(같은 종에 붙은 다른 이름) 844개를 제거했다.
여러 언어에 능통했고 경성제국대 제주도생약연구소장으로 제주에서 방언을 연구하기도 했던 석 선생은 한국산 나비에 개성 있고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을 붙여준 주인공이기도 하다.
대표 사례가 날개 뒷면이 서울 시가지 지도와 닮았다고 해서 붙인 ‘시가도귤빛부전나비’이다.
그는 1930년대 초부터 사망한 1950년까지 75만 마리의 나비를 채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60만 마리 표본은 석 선생이 연구에 더 몰두하기 위해 교직을 떠날 때 자신을 이어 표본을 관리할 사람이 없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여겨 스스로 불태웠고, 나머지 15만 마리 표본은 한국전쟁 때 표본이 보관된 서울 남산 국립과학박물관이 포격을 맞아 모두 불탔다.
이에 국내에는 석 선생 동생 석주선 씨가 피난하며 챙긴 표본 32점만 남은 상황이다. 이 표본은 국가등록문화재 610호로 지정돼 있다.
이번에 귀환하는 표본들은 석 선생이 기증 또는 다른 표본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규슈대 연구실에 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북한 고산지대에서 채집된 ‘차일봉지옥나비’나 ‘함경산뱀눈나비’ 등 희귀종 표본도 포함돼 있다.
자원관 연구진은 지난 3월 규슈대에 석 선생 표본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대학 측을 설득해 기증을 이끌었다.
연구진은 규슈대 연구진과 함께 표본의 정보를 정리해 국제 생물학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기도 했다.
자원관은 오는 11월 특별전시와 학술회를 열 계획이다.
석주명 선생 표본 예시[국립생물자원관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