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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대 종정의 예술혼...“밭 매고 짬 날 때 하는 즐거운 일” [헤경이 만난 사람-성파스님]
‘성파 선예 특별전 - COSMOS’
금니사경부터 추상적 조형·도자기까지
10대부터 80대 작품 중 120여점 선별
옻이란 물질 그림 그릴 때 만족감 느껴
옻칠하고 도자 빚는 모든 날이 좋은 날
성파스님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의 ‘성파 선예(禪藝) 특별전-COSMOS’ 개막 하루 전인 지난달 27일 기자들과 만나 작품 해설 시간을 가졌다. ‘유동’ 섹션에서 바람과 물이 그려줬다는 작품을 스님이 응시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타고난 예술적 감각에 더해 작품 활동 자체가 즐거움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는 공자의 금언이 단지 듣기 좋은 수사만은 아닌 듯 하다.

지난달 28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개막한 ‘성파 선예(禪藝) 특별전-COSMOS(코스모스)’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인 성파스님의 10대 시절부터 80대까지 이어진, 선(禪)과 예술을 결합한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성파스님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서 선별한 120여 점이 ▷태초(太初) ▷유동(流動) ▷꿈(夢) ▷조물(造物) ▷궤적(軌跡) ▷물 속의 달, 6개의 주제로 나뉘어 다음달 17일까지 관람객을 맞이한다.

전시된 작품마다 스님이 들인 오랜 시간과 애틋한 정성이 오롯이 느껴진다. 특히 그가 40대였던 1980년대에 만들어진 작품인 금니(金泥)사경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設大報父母恩重經·한 없이 크고 깊은 부모의 은혜를 되새기고 이에 보답하라)’은 작품 앞에서 관람객이 깊은 숨을 들이마실 정도로 경건함이 맴돈다.

한 글자를 쓸 때마다 세 차례 절하는 ‘일자삼배’로 완성한 금니사경은 스님이 직접 닥나무로 만든 한지 위에, 이 역시 직접 제작한 민어의 부레로 만든 아교로 제작됐다.

스님은 “시중에 있는 화학 아교를 쓰면 건조하면 딱딱하고 습하면 풀어진다”며 “민어 부레는 반대로 건조할 때 누그러지고, 습할 때 굳는 신축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민어 부레 아교에 섞은 금가루는 스님의 세밀한 붓 터치를 따라 한지에 그림과 글자로 올려졌다. 부처님 말씀을 담을 한지도 쉽게 구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만들었다. 화폭을 담을 종이마저도 정성을 다한 것이다. 스님은 “닥나무 밭을 많이 만들어놨다. 앞으로도 제대로 된 한지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고도의 집중력과 많은 품이 필요한 작품에는 당연히 많은 땀과 눈물이 따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스님은 “다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며 웃었다.

“일과 중에 밭도 매고 꽃도 가꾸고 하는 게 많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승려로서 하는 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것(작품 활동)은 시간을 정해 놓고 하지 않는다. 짬이 날 때마다 이것도 하다가 저것도 하다가 했다. 그저 내가 생활하는 삶의 발자취 중 하나라고 본다.”

스님이 남긴 발자취는 사람들에게 ‘예술’로 다가가 감동을 준다. 그는 “그걸 내가 부정해서 많은 사람의 입을 막을 수는 없다. 예술을 생활 방편으로 삼는 것도 아니다”면서 “장난삼아 하다 보니 업이 됐다”며 담담히 말했다.

스님의 겸양은 ‘그림이 제 스스로 그려졌다’고 표현하기에 이른다. 물, 바람 등 유동성이 있는 자연 요소를 활용해 에너지를 보여주는 ‘유동’ 섹션에 걸린 작품들에 대해 스님은 “내가 칠한 게 아니라 물과 바람이 그려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자에 옻칠한 작품 [예술의전당 제공]

스님이 꾸준히 작품에 사용해 온 재료는 바로 옻이다. 옻을 안료와 섞으면 색색의 식물성 기름이 된다. 가로 150㎝·세로 210㎝ 안팎의 대형 한지 위에 옻과 안료를 풀어두면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반발성 때문에 바람이 이리저리 색의 궤적을 그려낸다. 원리는 동서양의 현대미술에서 자주 쓰이는 마블링 기법과 비슷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작품 제작 과정에서 화가의 개입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해설을 맡은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우리는 늘 물(物)과 아(我)의 문제를 가지는데, 이 작품에서는 ‘아’가 없다는 것. 물성 그 자체를 드러내준다”면서 “작가가 (옻의)물성의 본질을 통찰해 나를 완전히 비워내 버렸다”고 설명했다.

옻이라는 재료는 스님의 작품 세계에서 있어서 처음과 끝을 관통한다. 스님이 입산하기 전인 10대 중후반에 그렸던 민화는 옻판에 옻칠을 해 탄생했다. 그는 “옻이라는 물질이 그림을 그릴 때, 예술을 할 때 만족감을 느낀다”며 “내가 지금까지 사용한 물질 중에서 제일 좋다”고 말했다.

전시 초입에 맞닥뜨리는 ‘태초’는 옻의 물성을 제대로 보여준다. 얼핏 보면 거대한 폼롤러처럼 보이는 여러 개의 검은 기둥이 관람객을 맞이하는데, 삼베에 옻을 칠하고, 형태가 굳으면 모양을 잡아 옻을 다시 덧칠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 완성된 작품이다. 스님은 “반복 동작을 하면 할수록 (옻의)본성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작품을 눈으로 먼저 보면, 검다. 심연의 어두움인 듯, 검어도 정말 검다. 지금껏 봐온 인공물과 자연물을 모두 합쳐 살펴봐도 이런 검은색을 내는 것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정답은 산화철에 있었다. 스님은 “산화철하고 옻이 결합이 되면 검은색으로 변한다”고 귀띔했다.

손으로 직접 만져보면 콘크리트에 비해 내구성이 강해 우주선과 핵잠수함에도 쓰인다는 옻의 물성을 알 수 있다. 스님은 기둥 사이를 걸어볼 것을 주문했다. 곧 태초의 우주를 산보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옻은 다른 재료도 얼마든지 품어내는 용매가 되기도 한다. 스님은 “톱밥과 반죽할 수도 있고, 커피 찌꺼기를 합할 수도 있고, 기와가루를 섞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도자를 구워내 그 위에 옻칠을 한 작품은 그야말로 ‘선예(禪藝·선(禪) 수행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모든 예술 활동)’의 극치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나니 그냥 도자기가 아니라 ‘중생이 부처되는 과정의 형상화’인 듯 보인다.

“도자기를 만들기 전에는 아주 미세한 흙이다. 미세한 먼지, 미분은 마른 상태로는 절대로 결합이 안된다. 그래서 물을 타서 반죽을 해 결합을 시킨다. 형태를 만드는 성형을 거쳐도 그냥 두면 다시 먼지로 돌아간다. 구워서 초벌구이를 해도 깨뜨리면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유약을 발라 재벌구이를 하면 완전한 도자가 된다. 이제 깨져도 흙이 되지 않는다. 흙일 때는 중생이고, 완전히 구워진 후에는 성불이다. 즉,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중생이 깨우침만 하면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도자기가 아니다. 수행을 하면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도자기로) 실현해 보이는 것이다.”

전시의 마지막 섹션인 ‘물 속의 달’에서는 올해 작업한 그의 최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옻판에 옻칠한 작품 중 일부가 물 속에 잠겨있다. 옻의 특성상 물에 담궈놓는다 해도 어떤 변형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이동국 관장은 “현재 진행형인 ‘성파 작가’의 작품들이다. 이제 아주 노골적으로 종횡으로 선이 나아가며 ‘무아(無我·존재론적으로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뜻)’가 됐다”며 스님의 작품 세계가 다시 한번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10대 소년이 그린 옻판 위 옻칠 민화와 80대의 종정스님이 제작한 옻칠 작품 사이로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한 시간을 흘려보내며 80대의 작가는 ‘상(相)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떠나보냈다.

전시를 나서는 관객에게 마지막으로 전하는 작가의 말은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평상심이 곧 도(道)다)’였다.

“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평상의 마음이 도다. 이들 작품은 나의 평상심으로 작업한 결과물이다. 물 흐르듯이 흐르고 바람 불 듯이 걸어간 삶의 자취들이다.”

성파스님에게 작업하는 과정은 늘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어찌 보면 새로운 시도이고, 무에서 유가 나오는 이치의 장(場)이었다. 운문 선사의 말처럼 일상이 ‘날마다 좋은 날’이었던 셈이다.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빚고, 옻칠을 하고, 천을 염색하는 그 모든 과정이 그에겐 날마다 좋은 날이다.

심지어 쪽염색을 한 종이인 감지에 금니로 사경을 하던 고려 예술의 기법을 되살린 작품마저도 고됨 보다는 즐거움이 먼저였다. 그는 “(작품 제작 과정이) 1000년 세월을 되짚어가는 고되고도 즐거운 여정”이라면서 “이번 전시가 (관객에게도) 즐거움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또 “불가에는 선농일치(禪農一致)라는 말이 있다. 농사를 지으나 선을 수행하나 경계를 허물면 둘은 하나로 통한다는 것”이라며 “우리의 삶과 예술도 그렇게 통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민경 기자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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