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간 감옥서 이스라엘 공부해
2011년 포로 교환으로 감옥 나와
지난해 이스라엘 기습 작전 기획
16일(현지시간) 사망한 하마스 정치지도자 야히야 신와르. [AFP] |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16일(현지시간) 사망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지도자 야히야 신와르는 중동 지역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 중 하나였다. 지난해 10월에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습격을 기획하고 주도해 중동 지역을 위험에 빠뜨렸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걸어 다니는 죽은 자’라 불릴만큼 이스라엘 표적 1순위였던 그는 결국 이스라엘군 손에 사망했다.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신와르는 1962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의 난민촌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현재 이스라엘 남부 아슈켈론에 해당하는 옛 팔레스타인 마즈달 아스칼란 지역에서 살다가 쫓겨났다. 그의 이주 경험은 1980년 하마스에 합류하는데 영향을 끼졌다.
가자 이슬람대학교에서 아랍어를 전공한 그는 1987년 제1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반이스라엘 독립투쟁) 때 하마스 창립에 참여해 보안조직을 맡았다.
그는 1988년부터 20여년간 이스라엘에서 감옥생활을 했다.당시 그는 주로 이스라엘에 협력한 팔레스타인인들을 색출해 잔혹하게 살해하는 활동으로 ‘칸 유니스의 도살자’로 불렸다. 1988년 이스라엘 군인 2명을 살해하고 난 뒤 팔레스타인 측 정보원 4명도 죽이려고 계획을 세웠다가 붙잡혀 이듬해 이스라엘 법원에서 종신형 4회를 선고받았다.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공개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수장 야하이 신와르 사망 당시 영상. [이스라엘군 제공] |
감옥에 있는 동안 신와르는 ‘가시와 카네이션’이라는 자전적 소설도 썼다. 소설 속 인물인 아흐메드는 신와르처럼 가자에서 태어나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를 키우며 성장한다. NYT는 “이스라엘에 대해 저항하는 군대들이 끝없이 희생하는 내용이 주제인 책”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공부도 계속했다. 히브리어를 공부해 이스라엘 신문을 읽는가 하면 동료 수감자들을 휘어잡아 대표로 교도관들과 협상하기도 했다. 또 교도소 바닥에 땅굴을 파는 식으로 여러 차례 탈옥을 시도했다.
그러나 2011년 이스라엘 당국이 하마스에 인질로 붙들려 있던 이스라엘 군인 길라드 샬리트와 포로 교환을 할 때 1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수감자들과 함께 풀려났다.
당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포로 교환을 승인했다. 2022년 재집권한 네타냐후 총리로선 결과적으로 자신이 풀어준 인물이 현재 가자지구 전쟁을 일으킨 핵심 인물이 돼 돌아오게 하는 뼈아픈 실책을 저지른 셈이다.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에서 하마스 수장 야히야 신와르의 사망 소식을 축하하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며 춤을 추고 있다. [AFP] |
포로 교환으로 감옥을 나온 신와르는 그때부터 인질을 이용할 방법을 생각했다. 신와르는 당시 “팔레스타인 포로에게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 군인을 잡았다는 소식은 우주에서 가장 좋은 소식”이라며 “그에게는 희망의 빛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옥에서 나온 뒤 신와르는 결혼해 자녀도 가진 적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은 영상에 찍힌 신와르 부인은 사마르 아부 자마르로 신와르보다 18세 젊다고 보도했다. 신와르도 생전에 “아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한 단어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드론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하마스로 돌아온 신와르는 군사조직 책임자가 돼 2012년 이란혁명수비대(IRGC) 정예 쿠드스군 사령관이었던 가셈 솔레이마니를 만나는 등 이란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하마스의 가자지구 지도자를 지낸 하니예가 2017년 물러나자 신와르가 이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해 하니예는 하마스 1인자인 정치국장에 선출됐다.
2021년 신와르 연임이 결정된 직후 이스라엘군이 칸 유니스에 있는 그의 자택을 노려 공습했다. 가자지구 지도자가 된 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그는 이스라엘의 암살 시도 직후 여러 차례 공개 행보를 보이며 건재를 과시했다.
신와르는 하마스 무장조직 알카삼 여단 사령관인 무함마드 데이프 등과 함께 이스라엘을 기습하는 ‘알아크사 홍수’ 작전을 계획, 작년 10월 7일 이를 전격 실행에 옮겼다. 이날 약 1200명이 살해됐고 250여 명이 납치됐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수장 야히야 신와르가 17일(현지시간) 사망한 가운데 신와르의 생전 모습. 2018년 3월 가자 북부 자바리 동쪽 이스라엘 국경 근처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 |
이스라엘은 신와르에 대해 40만달러(약 5억5000만원)의 현상금을 내걸었고, 국제형사재판소(ICC)도 그의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지난해 11월 4일 기자회견에서 “신와르를 찾아내 제거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지난 7월 하마스 정치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예가 사망하면서 신와르는 사실상 하마스의 절대적인 통치자로 자리잡고 있었다. 알 딘 알-아워데 정치분석가는 “신와르와 상의하지 않고는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며 “그는 평범한 지도자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binn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