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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히브리어에는 ‘여동생이 없는데 여동생이 매춘부가 아님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라는 표현이 있다. 바로 그런 상황으로 내가 내몰리고 있었다.”
‘코로나19가 인구 감축을 위해 조작됐다’는 음모론의 주모자가 돼 버린 저자는 마침내 깨닫는다. 자기가 이미 믿고 있는 것을 믿으려 하고 강렬한 증오심에 휩싸인 사람을 상대로 이성적인 토론을 한다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할 수도 있음을. 그는 세계적인 행동경제학자이자 저서 ‘상식 밖의 경제학’, ‘경제심리학’ 등으로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 평판 높은 댄 애리얼리다.
세상의 악으로 표적이 돼 온갖 증오를 받게 된 애리얼리는 억울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가짜 뉴스를 조목조목 반박한 일련의 동영상을 만들어 온라인상에 올렸다. 그러나 매번 헛발질이었다. 수많은 댓글이 마치 성난 말벌떼처럼 화면을 가로질러 날아다니며 그 동영상을 공격했다. 현실에서는 날마다 살해 위협을 받았다.
애리얼리는 수만 명이 한순간에 자신을 악마로 만들어버리게 된 과정과 그 이유를 밝혀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런 그가 마침내 해낸 것이 바로 신간 ‘미스빌리프(Misbelief·오신념)’ 출간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집단적인 적의에 노출된 그의 실제 경험이 녹아든 ‘잘못된 믿음에 대한 보고서’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을 이해해보고자 노력하는 저자의 유익한 통찰과 끝내 잃지 않으려는 낙관적인 태도가 담겼다.
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잘못된 믿음에 휩쓸릴 위험에 처해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14억여 원의 상금을 독도 평화를 위해 기부한다는 소문, 김의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실수를 인정한 ‘윤석열·한동훈 청담동 술자리’ 유언비어, 국회의사당 아래 지하 벙커에 로봇 태권 브이가 숨겨져 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저자는 거짓 정보의 재앙은 사회과학 영역을 넘어선다고 단언한다. 법적 규제를 만들고 기술을 발전시킨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거다. 그저 주변을 둘러보면서 “저 사람들 진짜 미친 거 아냐?”라고 되뇌는 대신 잘못된 믿음에 빠져들게 만드는 감정적 욕구와 심리적·사회적 힘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는 진짜 이유다.
저자는 잘못된 믿음은 일종의 ‘과정’이라고 봤다. 오신념은 어느 날 갑자기 짠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 ‘잘못된 믿음의 깔대기’에서 점차 커진다는 것이다. 이 깔대기를 따라 내려가는 동안 사람들의 건강한 회의주의는 ‘주류’에 대한 반사적 불신으로 발전한다. 열린 마음이 의심으로 변하는 지점이다. 여기까지 다다르면 더는 기존의 서사에 그저 의문만 제기하는 게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발견한 완전히 새로운 믿음을 받아들이고 애착을 갖는다. 이 단계에 이르면 정부나 과학기관이나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에 접근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 정보가 거짓일 수 있는 여러 가지 근거를 찾는데 골몰한다. 사악한 엘리트들이 저지르는 왜곡되고 악의적인 계략의 일부에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어서는 시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충분히 극단적인 잘못된 믿음을 받아들이면 이런 믿음은 때때로 돌고 돌다가 중간에서 자기들끼리 만나서 이상한 동맹을 맺는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백신을 거부하며 현대의학을 회피하는 극진보주의자가 큐어넌(QAnon) 등 정부를 불신하는 극보수주의자와 손을 잡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잘못된 믿음의 현상 그 자체는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인 차원의 특징이 아니라 인간적인 특성 차원의 까다로운 문제”라고 지적한다.
미스빌리프/댄 애리얼리 지음·이경식 옮김/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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