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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트럼프 재등장·러북 군사동맹이 기회가 될 수 있는데

우크라이나 언론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앞장서 전파해 온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이야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대통령으로 다시 선출되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동력은 급속하게 떨어지고 결말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북한군 파병에 관한 언론 보도도 시들해졌다. 우크라이나는 곤경에 빠졌고, 155㎜ 포탄으로 러시아를 ‘위협’하던 한국은 머쓱해졌다. 북한의 포탄은 불량품이지만 한국의 말폭탄은 공포탄이다.

북한군 파병은 절박한 러시아가 북한에게 ‘어음’을 주고 무기와 병력을 얻는 일종의 ‘급전 거래’다. 그런데 지난달 최선희 외무상이 러시아를 방문해 ‘충성 서약’을 하는 것을 보니 오히려 북한이 더 다급한 모양새다. 사실 러시아와 북한은 지난 6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협정’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현상균형을 이미 훼손했다. 균형은 한미동맹과 한반도의 휴전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과 동맹이 아니므로 군사적 개입 장치는 없었다. 중국은 러북 군사협력과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더 예민해질 것이다. 북한은 이 상황을 이용할 것이고 일본도 여러 계산을 할 것이다. 트럼프가 러시아의 북한 ‘어음’ 신용을 높여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러시아의 신용도 원래 부실하다. 물론 트럼프가 어느 방향으로 튀느냐에 따라 동북아정세는 달라질 수 있다.

북한군 파병 소식은 러시아와 북한,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절박함에 더해 한국의 히스테릭한 ‘안보 트라우마’가 얽혀서 더 증폭된 측면이 있다. 한국은 특히 북한과 일본이 관련되는 문제에는 늘 양극단적인 감성으로 널뛴다. 반면 미국이 한다는 일에는 법이고 예산이고 상관 않고 따른다. 결국 북한과 러시아, 중국의 도발은 무엇이든 안보위기가 되고 안보의 경제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한국 스스로 안보위기를 외칠수록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커진다. 최근의 증시 침체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은 외부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국력이 있다. 그런데도 미 정권 교체 때마다 안보불안감을 드러내며 새로운 인맥을 찾는다고 부산해진다. 외교에서 인맥은 강자가 약자를 조종하고, 약자는 이용당하는 통로일 뿐이다. 서로 친척이었던 유럽 왕조의 인맥도 전쟁을 막지는 못했다. 결국 자신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최선의 억지력이다. 그래서 경제성장의 지속과 군사력 확충은 안보장치의 기반이다.

한국은 국력에 맞는 전략적 지혜로 외교적 창의성과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한국의 안보적 공헌과 그 대가를 트럼프와 협상하는 담력이 오히려 미국의 신뢰를 얻고 러시아와 북한, 중국을 긴장시킬 것이다.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협력에 ‘한국도 포탄 제공’ 운운하는 반사적인 반응만 할 게 아니다. “필요한 조치를 할 권리가 있다”는 포괄적이고 모호한 외교언어가 더 단호한 압박이다.

예측할 수 없는 의도가 더 두려운 법이다. 1909년 독일은 “사태가 전개 되는대로 행동하겠다”(let the event take its own course)는 우아한 협박으로 러시아의 오스트리아·세르비아 분쟁 개입의도를 꺾었다. 결국 정책결정자들이 문제다. 한국 외교부는 정치의 치마폭에 숨어있다.

이현주 전 외교부 국제안보대사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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