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오는 24일 재계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경제 현안과 향후 성장전략을 논의한다. 경제단체장과 10대 그룹 총수, 포스코, KT 등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가 참석 대상이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과감한 투자와 일자리 창출, 대기업과 중소기업 동반성장, 해외진출 확대, 물가안정 솔선 등을 당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재계 대표들과 머리를 맞대고 경제 해법을 찾으려는 의도를 굳이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 경우에 따라선 더욱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재계는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기업인 출신으로 줄곧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한 이 대통령과 대ㆍ중기 상생을 명분으로 노골적으로 재계를 윽박지른 전임 노무현 대통령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투다.
대통령이 대한상의 신년인사회에서 "재계 총수들의 신년사를 관심있게 읽었다. 나는 친기업인이다"라는 덕담과 함께 "정부도 규제완화와 친환경 미래사업 R&D 지원에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 고 밝힌 지가 불과 보름 전이다. 그런데 곧바로 재계 총수 ’소환’은 임기 말까지 경제를 직접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이미지 메이킹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MB정부는 출범 직후 청와대에서 관계 장관이 ’투자’하고 외치면 재벌 총수들더러 ’일자리’로 화답하라는가 하면 도시락 점심으로 고통분담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다 지난해 신년인사회 열흘 만에 ’긴급 투자 및 고용 관련 간담회’를 열어 불신감을 드러내더니 9월 회동에선 공정사회 구현 명분의 동반성장을 강하게 질책했다. 이제는 대기업을 물가상승 주범으로 몰며 공급가 인하를 채근한다.
대표적 사례는 지난주 "기름 값이 묘하다"는 대통령의 ’지침’이다. 국제유가가 떨어졌는데 정유업계는 폭리를 취하지 않느냐는 뉘앙스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유류세 환원, 관세 인상, 환율과 인건비 상승 등을 감안한 정유사 마진은 ℓ당 9원, 평균 영업이익률은 1~2%에 그친다. 또 원당의 국제시세가 전년보다 무려 173%, 원맥과 대두가 각각 60% 이상 오른 사실은 귀막은 채 공정위까지 ’물가안정위원회’로 돌변, 가격 인하를 강요하는 분위기다.
검찰 국세청 등의 재계 압박은 강도를 더한다. 6개월째 검찰 수사를 받는 한화그룹은 2011년 경영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지속될 지 모른다. 재계를 향한 국세청의 동시다발적 세무조사는 계속 확산되는 양상이다. 국세청은 통상적인 정례 조사라고 둘러대지만 국민들은 레임덕을 막으려는 선제적 조처로 받아들인다.
시장경제를 좀먹는 담합과 매점매석은 뿌리뽑아야 한다. 재산도피, 탈세, 분식회계 등 특정 기업의 불법행위 역시 단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세율구조 등 가격이 비쌀 수 밖에 없는 연유를 먼저 따져보고 수급을 원활히 하는 게 순리다. 재계 전체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건 위험천만이다. 반(反)기업 정서 확산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재계는 MB정부 요구를 거의 들어주다시피 했는데 친서민 중도실용으로 궤도를 수정, 재계를 나무란다며 볼멘소리가 이만저만 아니다. 지난해와 올해 투자규모와 일자리 창출 규모를 사상 최대로 늘려 정부 방침에 동참했고, 정부가 해야 할 미소금융에도 적극 협조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 지적처럼 중소기업 동반성장도 나름대로 성의껏 추진하고 있다고 자평한다.
대통령과 재계 총수 회동은 이제 시대상황에 맞게 변해야 한다. 퍼퓰리즘 립서비스보다 친기업 정책 선(先)집행으로 시너지 효과를 배가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갉아먹는 기업 경영 장애물을 미리 미리 치워주는 수요자 마인드가 필요한 것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 금리 환율 등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정책이 그 예다.
단기적으로는 단가조정 협의 신청, 납품단가연동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도입, 동반성장 지수 발표 등에 반시장 요소가 없는지 재검토했으면 한다. 동반성장 정책이 거꾸로 중소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소비자 피해를 초래해서야 되겠는가. 중소기업을 위한 조처라면 가업상속 규제완화가 더 현실적이다. G20 다른 회원국들도 ’회장님 군기잡기’에 나서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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