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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화>몸에 숨겨진 언어…그 문법에 눈뜨다
獨 세계적 무용가, 피나 바우쉬

청소년과 공연과정 담은 다큐

사랑의 감정 쏟아내는 무용극

아이들 몸짓엔 거장의 흔적이



일렬로 늘어선 아이들이 쭉 내민 엉덩이를 삐죽거리며 다가온다. 정면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이들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좀 웃긴데…웃어도 될까’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주위를 둘러볼 필요는 없다. 피나 바우쉬의 무대라면. 보고 들리는대로 표현하는 피나 바우쉬의 무용은 관객에게도 스스로 해석하고 즐길 자유를 준다.

피나 바우쉬는 2009년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영화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 속에서는 여전히 줄담배를 피우는 그를 만나볼 수 있다.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는 그와 수십년간 친분을 유지해온 안네 린젤이 연출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피나 바우쉬의 ‘콘탁트호프’를 10대 청소년이 공연하는 과정을 담았다.

피나 바우쉬는 2002년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그녀에게’로 잘 알려졌다. 그는 영화 앞뒤 ‘카페 뮐러’와 ‘마주르카 포고’를 직접 선보이며 자신의 ‘부퍼탈 탄츠테아터’를 알렸다. 탄츠는 ‘춤’, 테아터는 ‘연극’이란 의미다.

피나 바우쉬는 일상생활에서의 동작을 옮긴 춤과 연극을 넘나드는 극적인 무대를 만들어냈다. 국내에서도 ‘봄의 제전’ ‘카네이션’ ‘러프 컷’ 등을 선보였다.

무용과 연극, 음악과 언어가 섞여든 ‘탄츠테아터’에 대한 개념이 정리가 안 된다면 영화 속 작품 ‘콘탁트호프’를 보면 자연히 알 수 있다.

‘콘탁트호프’는 독일어로 ‘매음굴’이라는 의미. 남녀가 만나 처음으로 서로를 알아가고 감정을 나누는 과정을 그린 무용극이다.

남녀 사이의 사랑과 두려움, 그림움과 외로움, 좌절과 공포를 몸짓과 소리로 풀어놓는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이다. 처음엔 한 소년이 부드럽게 소녀를 어루만진다. 이어 다른 소년이 그녀를 툭툭 친다. 나중엔 13명의 소년이 몰려들어 모두 그녀를 거칠게 건드린다. 부드러움은 공격이 된다. 그리고 불쾌해 하는 소녀에게 몸짓으로 말한다. “그러려고 그랬던 게 아니야. 상처 줄 의도는 없었어.” 


1978년 초연된 이 작품은 2000년엔 65세를 넘긴 아마추어 댄서가 공연했다. 그로부터 8년 후 이 공연을 위해 독일 부퍼탈 인근 12개 학교 46명의 아이들이 모여 카메라에 담겼다. 무용을 해본 경험도 없고 피나 바우쉬가 누군지도 모르던 청소년은 수줍지만 순수하게 세상과 소통을 시작한다.

“현대무용을 배우게 돼서 좋아요. 힙합 외에도 말이에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거죠.” 알렉스는 말한다.

“이건 절 위한 거예요. 절 위해서, ‘그래 조이, 넌 해냈어’하는 자신감을 얻으려고.” 조이는 털어놓는다.

처음 움직이는 몸을 어색해하고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부끄러워하던 아이들은 점차 몸짓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을 섞는다. 어떤 이음새도 없이 연습과정 중 끼어든 인터뷰에서 아이들은 마음을 연다. 아픈 가족사와 자신의 컴플렉스,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도전과 성장, 자신감으로 빛나는 눈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피나 바우쉬의’라고 하지만 기대만큼 피나 바우쉬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창백한 얼굴 깊은 주름 그 속, 더 깊은 눈빛은 존재감을 더한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무대 밖 피나 바우쉬를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실수해도 괜찮아요. 그냥 대견할 뿐이에요. 아이들이 한 노력 말이에요.” 피나 바우쉬의 목소리는 여전히 귓가를 맴돈다. 개봉관은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와 강남 시너스 2개 뿐이다. 20일 개봉, 전체 관람가.

윤정현 기자/hi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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