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부터 지난해 하반기까지 6년 동안 중국에서 사업을 했던 김 모(48) 씨는 지금도 자주 불면증에 시달린다. 한 코스닥 상장사의 중국법인장(총경리)을 역임했던 그는 현지 근로자들에 의해 몇 일씩 감금됐다 풀려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다른 한국계 투자기업과 달리 한국인 직원과 현지인 직원을 차별하지 않고 4대 보험(산재, 의료, 양로보험 및 기업연금) 보험료도 100% 부담하고 사원복지에도 남달리 신경을 써 왔던 터라 배신감은 더했다. 중국 현지 외국인 투자기업들은 대부분 4대 보험료를 20∼30%밖에 사측이 부담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그가 몸담았던 회사는 산둥성 칭다오(靑島)에서 봉제, 편직, 염색 사업으로 연간 2400억원씩(1억달러) 수출하던 견실한 업체였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출액이 급격히 줄면서 일시적으로 두 세번에 걸쳐 4대 보험료를 체납했다. 그러자 어느날 수 백명의 근로자들이 작업장을 뛰쳐나와 사무동을 점거하고 총경리와 한국인 직원들을 감금했다. 사회보험료를 체납한 근로자는 이직이 불가능하게 돼 있어 이에 불만을 품은 것이다.
김 씨는 “그동안 사측의 성의를 봐서라도 근로자들에게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호소했으나 막무가내였다. 현지 경찰도 불법점거에 대해 수수방관했으며 도움을 청할 곳이 전혀 없었다”고 회상했다. 점거난동이 반복되면서 수주량이 급감하자 회사의 관리체계는 무너졌고, 한국 본사는 급기야 지난해 3분기에 현지법인을 청산했다.
랴오닝성 선양(瀋陽)에서 볼밸브를 제조하는 기화밸브유한공사(대표 정창무). 2002년 현지에 진출했던 이 회사는 2008년까지만 해도 제품 불량률이 높아 철수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석유화학ㆍ정수 플랜트에 쓰이는 밸브류 생산하는데 현지 근로자들의 기술 숙련도가 낮아 불량률이 70%에 이르렀다. 이 회사는 2008년 초 ‘종합진단 및 컨설팅 지원’을 우리 정부로부터 받았다.
진단에 따라 용접방식을 변경하고 용접조건, 도장라인을 개선하는 등 공정 대수술이 이뤄졌으며, 오는 6월 설비개선도 완료된다. 과다 제품재고, 원부자재 재고도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고 매출처도 다변화됐다. 그 결과 2007년 매출액이 58억원에 불과했던 이 회사는 2008년 182억원, 2009년 200억원을 넘겨 본격적인 성장가도에 들어섰다. 진단 및 컨설팅을 담당했던 중소기업진흥공단 관계자는 “기화밸브는 중국 진출 이후 6년간의 어려움을 딛고 정상화,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단계가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노무비, 세금, 관리비 등 잇단 비용 상승과 위안화 절상에 중국 진출 기업들의 시름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그냥 낮은 인건비만 보고 들어갔으나 이제는 국내 못지 않은 선진 경영과 기술혁신을 통한 가치창출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퇴출 위기레 직면하게 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중국의 투자 및 시장환경이 급변하면서 현지 기업 철수가 잇따르고 있다. 그 많던 대(對)중국 투자설명회는 2008년 이후 자취를 감추었고 ‘중국 투자진출 리스크관리’ 설명회나 강좌가 대신하고 있다.
2007년 이후 현재까지 가시화된 중국리스크는 노사관계 악화 및 파업, 노동계약법 정착, 내수촉진을 위한 임금소득 향상정책 및 최저임금 인상붐, 물가 및 부동산가격 상승, 세무관리 강화, 사회보험료 인상 등이다. 여기에 최근 각종 공구ㆍ볼트ㆍ못ㆍ나사 등 기초부품의 원가상승, 4대 보험료 외 주방공적금(주택공제기금) 신설, 구인난 등까지 겹치고 있다.
또한 올해부터는 임금조례 시행으로 임금협상에 노동자 관여도가 커지고 공회(노조)의 경영 영향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사회보험법이 7월부터 발효돼 복리비 등 간접인건비가 급등하고, 주택공제기금 부담도 늘어나게 됐다.
이평복 칭다오 KOTRA KBC센터 고문은 “소득 공정분배정책 실시, 임금분배제도 개혁 등을 통해 고(高)노동코스트 시대로 들어선 데다 위안화 절상까지 리스크가 커졌다”며 “중국의 생산연령인구도 2015년 피크에 달해 30대 이하 젊은 노동력이 감소세로 들어가 조만간 농민공의 임금이 대졸자 임금보다 높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2010년 하반기 기준 중국에 단독투자, 합자, 부분투자 등의 형태로 진출한 우리나라 제조업체는 4만여개에 이른다. 국내 제조업체 12만개의 3분의 1이 중국에 나가 있는 상태다. 이 중 수출입은행 결제를 통해 소재나 거래내역이 파악되는 업체 수는 1만4800개 정도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김인성 컨설팅사업처장은 “도처에 원가상승 요인과 리스크가 늘어나고 있어 우리 기업들이 저부가가치 제품 대량생산이라는 종전의 방식으로는 이제 버티지 못하게 됐다”며 “국내 못지 않은 경영, 기술혁신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조문술 기자@munrae>freihei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