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이고, 잔혹하게 묘사된 게 인간이었다. 지구 종말을 이끈 불가항력의 재난을 다룬 영화들의 스테레오타입(Stereotypeㆍ고정관념)이다.
산과 바다가 뒤엉키는 스펙터클한 영상이 지나간 뒤엔 으레 생존을 건 탐욕스러운 인간 군상에 초점을 맞춰왔다.
나 자신 혹은 가족의 빵과 물을 위해선 살인도 삶의 방식이라는 게 극한 상황에선 인지상정으로 여겨졌다.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대재앙 속에선 누구라도 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는 동질감을 영화들은 상식화했다.
대재앙 한가운데 있는 이웃나라 일본. 그곳에 사는 1억3000여만명의 일본인은 인간 본성이 추악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말았다. 인간은 공동선을 위해 양보하고, 안정된 이성을 갖고 있는 존재임을 그들은 보여줬다.
지진 관측 이래 역사상 네 번째로 강한 진도 9.0의 지진과 높이 10m의 쓰나미가 수십년 가꾼 내집과 정원을 무참히 짓밟은 사태 앞에서 그들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이성’을 잃지 않았다.
리얼리티 영화의 무대가 된 일본에서 영화 속 야만적 행태는 없었다. 공포와 흥분이 뒤섞인 폐허 위에 외롭게 선 주유소에서는 200~300m가량 줄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져 있었다. 경적을 울리며 조바심을 내는 사람은 없다. 주유량도 대당 2000엔(한화 2만여원)으로 제한했지만 불평은 없다.
한국인에겐 친숙한(?) 단어인 생필품 사재기도 목격할 수 없다. 제한적으로 생수를 공급해 주는 학교,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쇼핑센터와 편의점 앞에는 새치기하는 사람없이 자신의 차례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CNN은 “일본인은 가게에서 뒷사람을 위해 꼭 필요한 만큼만 사가는 극도의 침착함을 보였다”며 “구호품을 받을 때도 순서를 기다려 하나씩만 받아갔다”고 전했다.
피난소에 모인 주민들에게서 그 어떤 원성도 들리지 않는다. 그 흔한 고성과 동물 같은 울부짖음도 찾기 어렵다. 노약자를 대피소에 먼저 입장시키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가 체화된 때문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메이와쿠(迷惑)’ 근절 문화가 어릴 적부터 사회윤리 교육시간의 핵심 키워드로 배웠고, 몸에 밴 공동체의식은 위기 때 재기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위기 때의 행동요령을 알면서도 막상 일이 터지면 우왕좌왕하는 여느 나라의 모습도 일본인들에게는 생각할 수 없는 행태였다.
정부의 지진 조기 경보시스템은 적기에 발령됐고, 국민들도 매뉴얼에 따라 동요하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원전 피해 초기 대응 미숙에 비난여론이 있지만, 도(度)를 넘지 않는다.
미야기 현에 사는 메구미 안도(72) 씨는 폐허가 된 마을을 다시 찾아 담담한 표정으로 “걱정스럽지만 하나씩 정리를 해야겠다”며 지금 해야 할 일을 찾았다.
대재앙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일으켜 카오스(Chaos·대혼돈)를 가져올 것이라는 상식이 일본에선 틀어진 것이다. 살아남은 자라 해도 혈육과 터전을 앗아간 시커먼 바닷물만큼이나 가슴이 까맣게 타버려 절망적이지만, 일본인들의 저력은 바래지 않았다.
매년 1만6000여회의 지진이 발생하는 땅에서 재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산 일본인. ‘他人に 迷惑を 掛けるな(메이와쿠 가케루나)’라는 그들의 실천양식은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의식이 부지불식간에 스며든 한국인에게 많은 것을 전하고 있다.
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