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일본 대지진 사태는 한-일 재계 관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 산업의 피해가 우리 기업들에게도 악재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경쟁과 극일을 뛰어넘는 ‘공진화(Co-evolution)’의 필요성도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과거 우리 기업은 한발치 멀리 있던 일본 기업을 따라가는데도 숨이 가빴던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IT 등 일부 산업에서는 오히려 일본의 아성을 뛰어넘었다. 숨을 고르던 일본 기업이 반격을 가하면서 본격적인 경쟁이 펼쳐지던 가운데 발생한 대 참사에서, 우리 기업들은 앞장서서 일본 기업을 지원하며 본격적으로 협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국내 경영인들도 일본과의 협력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과거와 달리 이젠 일본 기업들도 이제 따라잡아야 하는 존재가 된 삼성전자의 이건희 삼성 회장도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아직 일본에 배워야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 역시 지난해 처음 개최된 아시아스틸 포럼에서 중국을 포함한 한ㆍ일 철강업계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3국의 철강업체와 각국의 협회, 관련 정부기관이 참여하는 ‘한ㆍ중ㆍ일 철강 협력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실제로 포스코는 최근 신일본제철과 손잡고 브라질의 희소금속 광산을 인수했다. 자원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일을 대표하는 철강사가 자원개발 사업을 함께 한 셈이다.
특히 글로벌 기업환경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독립적인 행보가 아닌 생산적인 협력은 필수적이다. 삼성전자가 TV분야의 맞수 소니와 LCD합작사인 S-LCD를 운영하며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진행하는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삼성전자는 또 도시바 등 일본 반도체 기업과의 특허 공유를 통해 관련 법적 분쟁 우려에서 벗어나 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일의 협력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대지진은 양국에 그 어느때보다도 큰 상생의 장을 제공했다. 한국기업들은 구호성금 액수에 있어서 일본의 자존심도 고려하는 배려의 모습을 보였고 철강 및 원유 등을 일본에 우선적으로 공급하는 등 전에 없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는 그간 서로 간에 남아있던 감정적인 앙금을 씻고 진정한 협력의 기틀을 다지는 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도 이제 일본에 대한 무조건 경쟁심을 딛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도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 보고서에서 “한국 제품의 일본 진출을 늘리고 일본 부품ㆍ소재 기업의 한국 투자를 늘려야 한다“며 “양국이 협력해 신흥시장국에 함께 진출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남현 기자@air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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