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저하·물가상승 압박
경제목표치 수정 불가피
섣불리 전망했단 망신살
재정부 전망치 수정 뒷짐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25달러 상승하면 성장률은 0.5%포인트 내려가고 물가는 0.75%포인트 올라간다는 분석자료를 내놨다. 올해 우리 정부가 내세운 3% 물가 전망은 물론 5% 경제성장률 목표까지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 목표에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재정부 관계자는 “아직 목표 수정작업에는 착수하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 현오석 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물가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비우호적으로 급변, 당초 예상한 올해 물가상승률 3.2%를 상향할 것임을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4일 ‘유가 급등이 경제활동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The effects of oil price hikes on economic activity and inflation)’ 보고서에서 “튀니지 사태 이후 기름값이 배럴당 25달러 상승하면 2012년까지 OECD 회원국의 경제활동은 0.5%포인트 줄어들고 물가는 0.75%포인트 급등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동지역의 반정부 시위를 촉발시킨 튀니지 사태 이전 배럴당 9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던 국제유가는 현재 110달러 선으로 치솟았다. 연초에 비해 20달러 이상 오른 상태다. OECD가 예측한 유가 충격은 물가, 성장률 등 경제 전반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OECD는 이 보고서에서 “작년 12월 이후 브렌트유를 기준으로 유가는 약 40%나 폭등했다”면서 “식료품, 농수산물과 광물 등 원자재 가격 상승 속도는 지난 2008년 여름보다 더 빠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높은 석유 가격은 각국의 잠재 성장률에까지 피해를 줄 수 있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OECD는 이전 국제유가가 10달러 오르면 첫해 0.2%포인트, 그 다음해 0.1%포인트 추가로 물가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대지진과 중동 사태 확산으로 유가가 10달러 상승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이자 부랴부랴 25달러 급등을 기준으로 한 수정 분석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유가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이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내의 각종 산업연관 분석은 유가가 10% 오를 경우 국내물가는 0.7%포인트가량 상승하고 성장률은 그만큼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해왔다. 25달러는 기름값이 20% 안팎이나 오른다는 의미다. 단순비교에 무리가 없지않지만 결국 물가는 1.4%포인트가량 오르고 성장률은 반대로 1.4%포인트만큼 떨어지는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OECD 회원국은 대부분 선진국이다. 한국은 신흥국인 데다 유가 등 대외 변수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OECD가 회원국 전체를 대상으로 낸 평균치보다 더 큰 폭의 변동이 예상된다. 이렇게 대외 여건이 급박하게 변해가고 있지만 우리 경제당국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정부는 경제 전망치 수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하고 있지만 조정 수위와 발표 시기에 대해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사실 물가, 성장률 전망치 수정은 정부가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에 가깝다. 중동 민주화 혁명에 일본 대지진까지 작년 말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악재가 올 들어 연거푸 터졌다. 정부조차도 중동 사태와 일본 대지진 여파가 어떻게 흘러갈지, 유가가 얼마나 더 오를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거시경제 전망을 책임지는 재정부는 일단 시간 끌기에 들어갔다. 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전쟁으로 번진 중동 사태 등 대외 변수가 어느 정도 진정된 이후 경제운용 방향을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섣불리 경제 전망치를 수정했다가 또다시 수치를 조정하는 민망한 상황을 막기 위한 전술이다.
지난 23일 지식경제부, 한국은행, 한국석유공사, 에너지경제연구원, 리딩투자증권 등 다른 정부부처와 민간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올해 평균 유가는 배럴당 90달러가 아닌 100달러라고 수정 발표했지만 재정부만큼은 복지부동(伏地不動)이다. 물가, 성장률 전망치를 조정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재정부 관계자는 “물가는 어려운 상황이라 이미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둔다고 밝혔으며, 성장 쪽은 더 따져봐야 할 것 같다”면서 “고용은 지난 2월까지 좋았지만 앞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올 1분기 경제성장률과 소비자물가 상승률, 고용 등 통계가 나온 후 재정부의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현숙 기자/newea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