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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죽음을 주총때까지 알리지 마라”...누구의 유훈?
이희건 신한금융 명예회장 타계

마지막까지 ‘정신적 지주’ 役

신한금융지주 한동우 회장이 공식 취임한 날, 신한금융이 새출발을 다짐한 그날 신한의 정신적 버팀목이던 이희건〈사진〉 명예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향년 95세다. 그는 떠나는 순간까지 신한을 생각했다. 신한금융 주주총회가 끝날 때까지 알리지 말라고 했다. 유족들은 유지를 받들어 간단한 영결식을 마친 상태였다. 지난 23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한 회장은 취임 인사를 하자마자 이 명예회장의 사망 소식을 주주들에게 알려야만 했다. 한 회장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이내 울먹였다. 


고(故) 이 명예회장은 재일교포 사회의 단합과 민족 금융기관의 육성ㆍ발전에 평생을 헌신한 인물로, 신한금융 임직원은 물론 재일교포 사회의 정신적 아버지였다.

1917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가난한 농군의 아들은 15세 때 혈혈단신 현해탄을 건넜다. 조국 광복의 해인 1945년 그는 오사카 츠루하시역 앞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 장사를 시작했다. 이듬해 일본 경찰이 시장을 폐쇄하자 ‘청년 이희건’은 재일 한국인들이 스스로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30세의 나이에 상점가동맹 초대회장에 올랐다.

‘장사꾼 이희건’에 인생의 새로운 전기가 된 것은 신용조합을 설립한 일이었다. 재일교포 상공인들이 금융 문제로 어려움을 겪자 그는 1955년 대판흥은(大阪興銀)이라는 신용조합을 설립,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1970년대 들어 그는 오사카 재일교포 상공인들을 모아 모국 금융업 진출을 본격적으로 꾀하면서 1974년에 재일한국인 본국투자협회를 만들었다. 그는 1982년 7월 일본 전역에 흩어져 있던 재일교표 340여명에게 출자금을 모집, 국내 최초의 순수 민간자본 은행인 신한은행을 설립했고 1985년 신한증권, 1990년 신한생명보험, 1991년 신한리스 설립을 주도하면서 2001년 금융지주회사 출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재일한국인 후원회장이던 그는 올림픽 지원성금 520억원을 모금해 한국 정부에 지원했다.

제2대 신한금융 회장이 정식 취임하기 직전인 21일 그는 세상을 떠났다. 마치 창업세대와의 정신적 단절을 선언하는 듯했다. 신한금융 임직원들은 그래서 더욱 슬퍼하고 있다.

신창훈 기자/ chuns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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