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들이 홍보 등을 이유로 무턱대고 기네스북 등재에 나서면서 최대 20배나 부풀려진 대행 비용을 의심 없이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해서 낭비된 비용이 혈세를 포함, 5억원에 달하지만 해당 자치단체들은 기네스북에 오른 만큼 목적은 달성했다며 큰 문제의식을 보이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24일 경찰과 기록원에 따르면 2005년 A기록원을 세운 김모(42)씨는 국내 이색기록을 모으며 기록원을 키웠다.
국내에는 한국기네스협회가 ‘기네스 세계 레코드(Guinness World Records)’와 계약을 맺고 기네스북 등재를 대행해 왔으나 인증서를 남발하다 2001년 세계 기네스에 의해 직권으로 해산돼 한동안 기네스북 등재가 어려웠다.
대행사를 거치지 않고 개인이 직접 기네스 세계 레코드에 등재를 신청할 수도 있지만 국내 유일 기록인지 가려내기 어려웠다. 기네스 세계 레코드는 심판관이 심사를 해 등재 여부를 결정하며, 부문에 따라 심사 기간이 천차만별이고 때로는 심판관이 현장을 직접 방문해 조사를 벌이기도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씨의 기록원에는 기관과 개인의 등재 신청이 줄을 이었고 2008년부터는 명함에 ‘기네스’라는 문구를 새기고 다니면서 등재 대행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치단체들과 공기업, 사기업 가릴 것 없이 홍보 수단으로 기네스 등재에 열을 올렸고 A기록원이 요구한 등재 비용에 아낌 없이 비용을 지불했다. 자치단체가 신청한 기록은 세계에서 가장 큰 해시계, 옹기, 우체통 등 다양했다.
등재에 일정 비용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심사 신청에 400파운드(약72만원), 등재가 결정되면 등록비로 4000파운드를 추가로 내야 한다.
여기에 김씨는 인증서 수여식 등 갖가지 비용을 포함시켜 심사·등록비를 부풀렸다. 그러나 자치단체 4곳과 공·사기업 3곳은 아무 의심이나 확인절차 없이 A기록원이 요구하는 대로 선뜻 1억원 안팎을 내줬다. 김씨는 이렇게 5억원을 챙겼다.
더 큰 문제는 혈세 낭비가 확인된 뒤에도 ‘별 일 아니다’는 식의 반응이다. 경찰은 “이번 수사과정에서 대부분 자치단체가 ‘어쨌든 기네스북에 등재되지 않았냐’며 등록비가 부풀려진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개인 돈이었다면 꼼꼼히 살펴 등록비가 부풀려진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라며 “지역을 홍보하고 한국을 알리는 것도 좋지만 혈세를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A기록원 관계자는 “일부 사기업의 경우 심사·등록비 외에 추가되는 비용이 너무 많다고 지적해 직접 신청한 곳도 있다”며 “한 광역자치단체 담당자 역시 스스로 신청하겠다고 해 절차 등을 안내해 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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