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위조 파문을 일으킨 신정아(39) 씨의 자전적 수필집 ‘4001’에 언급된 일부 당사자가 명예훼손을 이유로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지금까지는 실제로 고소나 민사소송 등이 제기되지 않았지만, 책에 등장하는 이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생각하기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법적 분쟁이 시작된다면, 책에 언급된 내용들이 사실인지 얼마나, 어떻게 규명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법적인 분쟁이 시작된다면, 우선 내용이 사실인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형법 307조 2항에 따르면, 일부러 허위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출판물을 통해 이런 행위를 저질렀을 때는 고의성을 엄격히 따져 더 무겁게 처벌한다.
언론이나 출판물에 허위 사실이 실렸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낼 때는 원고가 허위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례다. 따라서 수필집에 ‘C기자’로 언급된 인물이나 정운찬 전 총리 등이 소송을 낸다면 이들 스스로 책에 기술된 내용이 허위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언론보도를 둘러싸고 분쟁이 생긴 경우는 보도 내용이 대체로 공적 영역이라서 사실 관계가 비교적 명확하게 가려지는 편이지만, 신씨의 책에 언급된 내용은 개인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서 진위 판단이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명예훼손 때문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당사자가 글쓴이를 고소하면 검찰이 수사하게 되고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검사가 허위임을 입증해야 신씨를 처벌할 수 있다.
만약 검찰 수사로 사건의 실체를 밝히지 못하면, 양쪽은 답이 보이지 않는 진실공방을 벌여야 할 수도 있다. 민사소송에서는 원고들이 신씨가 책에 기록한 사실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사실이 있었다는 점은 상대적으로 증명하기 쉽지만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문제가 된 사안은 이미 10년 넘게 세월이 흐른 내용이 많다. 따라서 C기자 등이 실제 원고가 된다면 이들에게 알리바이 수준의 완벽한 입증까지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언론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소송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기본적으로는 원고가 허위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지만 어떤 일이 없었다는 증명은 어려운 것이기때문에 상당한 정도의 소명을 해낸다면 신씨에게도 이를 반박해야 할 책임이 생긴다”며 “어느 수준까지 증명해야 하는지는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법관의 판단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와 상관없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렸다고 봐야 하므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형법은 허위사실이 아니라 진실이라도 이를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면 처벌할 수 있게 하고 있어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킨 부분을 문제 삼아 배상청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울지역의 한 변호사는 “명예가 훼손됐다는 사실은 명확하고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것이기때문에 위법성이 조각될 수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신씨의 책에 등장해 곤혹스런 입장에 처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책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받는 것인데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바에는 금전적 배상만을 위해 소송을 거는 것이 실익이 거의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책 발간에 앞서 신씨와 함께 법률적인 검토를 한 김재호 변호사는 이런 논란에 대해 “소송에 관해 미리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명예훼손은 당사자의 고소가 있어야 기소할 수 있기때문에 형사재판이나 민사소송이 전개될지는 C기자 등 책에 언급된 이들의 선택에 달린 셈이다. 만약 법정 다툼으로 이어진다면, 앞서 언급한 내용 이외에 사안에 공적인 성격이 있는지 등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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