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계열사들이 부를 대물림하는 관행이 실제로 확인됐다. 부를 대물림하는 방법은 주로 비상장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을 통해서였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로 생기는 수익에 과세한다는 방침을 밝힌 가운데 이런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재벌닷컴을 보면, 자산순위 30대 그룹 가운데 총수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20개 비상장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지난해 말 기준, 이들 20개 비상장사의 총 매출 7조4229억원 가운데 계열사 매출이 3조4249억원으로 집계됐다. 내부매출 비율이 46.1%나 된다는 의미다.
해당 재벌 20곳의 상장사를 포함한 전체 계열사 평균 내부거래 비율인 28.2%를 훨씬 웃돈다.
재벌 계열사들이 총수 자녀가 대주주인 비상장사에 거래물량을 대거 밀어줬음을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비상장사는 총수 일가가 지분을 거의 독식하는데다 비공개 대상이 많아 재벌의 편법적인 부 대물림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을 받아왔음에도 구체적인 계열사간 몰아주기 실태가 공개된 적은 거의 없었다.
재벌 계열 비상장사는 든든한 배경 덕분에 하나같이 고속 성장한다. 일반 중소기업이 치열한 경쟁 속에 명멸을 거듭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실제로 해당 20개 기업의 실적은 5년 사이 평균 3.27배로 급증했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경영으로 일궈낸 대박의 과실은 대부분 총수 자녀들에게 돌아갔다. 대주주인 이들은 거액의 배당을 매년 손쉽게 챙기는 것이다.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의 장남 장세준씨 등 자녀가 지분 33.3%를 보유한 영풍개발은 지난해 전체 매출 132억원 중 계열사간 매출이 130억원으로, 무려 98.1%나 됐다. 영풍그룹 계열사 건물관리 회사인 영풍개발은 지난해 18억6000만원의 순이익을 올려 주당 3만원의 고액 배당을 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장ㆍ차녀가 지분 18.61%을 보유한 식음료 업체인 롯데후레쉬델리카도 지난해 매출 584억 중 계열사간 거래액이 569억원으로 97.5%에 달했다. 롯데후레쉬델리카는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덕에 급성장했다. 2000년 37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설립 10년 만에 16배로 증가한 것.
또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아들 이현준씨 등이 대주주로 있는 티시스의 내부 매출액이 90.5%,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의 장남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대림I&S의 내부 매출 비율도 82.4%로 높았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장남 허윤홍씨 등 자녀가 지분 100%를 보유한 GS아이티엠이 80.8%,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두 딸이 대주주인 STX건설이 75.6%,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자녀가 대주주인 현대UNI가 63.6% 등의 내부 매출액을 기록했다.
국내 재벌 1, 2위 그룹의 비상장사 내부거래 비중도 만만치 않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등이 대주주인 삼성SDS는 내부 매출비율이 36.7%였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장남 정의선 현대차부회장이 대주주인 현대엠코는 57.3%였다.
이 밖에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자녀가 대주주인 동양온라인이 56.5%,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자녀가 대주주인 노틸러스효성이 35.4%,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자녀가 대주주인 한화에스앤씨가 54.3%의 내부 매출비율을 나타냈다.
조사대상 20개 비상장사 중 지난해 배당을 한 곳은 절반인 10개사로 나타났다.
이 중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현대엠코에서 125억원,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등은 삼성SDS에서 31억원,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은 대림I&S에서 21억원의 배당금을 각각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