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그렇지 환율이 완전히 시장기능만으로 움직인다는 얘기를 믿는 사람은 없다. 정책의 우선순위와 경제 상황에 따라 개입의 강도가 달라질 뿐이다. 현재 정부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수출이 아니라 물가잡기다.
외환당국이 글로벌 외환위기 이후 달러화 대비 환율 방어선으로 생각해온 1100원선을 열어버리자 단숨에 1080원선으로 치솟았다. 4일 외환시장에선 1086.60원까지 올랐다. 1110원선이던 지난달 29일부터 5영업일만에 27.80원 상승했다. 환율이 1080원대에 진입한 것은 지난 2008년 9월 8일(1081.40원) 이후 31개월만이다.
때 마침 국내 정유업계 1위 기업인 SK에너지가 기름값을 한시적으로 리터당 100원 인하하겠다고 발표했다. 뒤이어 GS칼텍스도 동참했다. 정유업계가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기름값을 내린 것은 대단한 결정이다. 하지만 환율 상승분 만큼 원유 수입단가가 떨어진다면 손실 폭은 줄어든다.
시장에서는 외환당국이 원화값 방어선인 1100원대를 오픈한 시점과 정유업계의 기름값 가격 인하를 향후 환율 흐름을 파악하는 중요한 시그널로 받아들이고 있다. 조재성 신한금융공학센터 이코노미스트는 “일정 부분 정부와 정유업계 간의 원화값 상승 컨센서스로 보는 게 맞다”고 해석했다.
시장에서는 또 원화값이 올라간다고 해서 무조건 수출기업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보진 않는다. 속도를 조절하고 변동폭을 줄이면 기업 들은 거기에 맞게 대응할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박형중 우리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분기에는 수출물량이 증가하는 성수기여서 원화값 상승분을 상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론 정부가 무한정 원화값 상승을 용인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이 보는 마지노선은 1050원선이다. 연초 수출기업 대부분은 연평균 환율을 1050원에서 1080원선으로 내다보고 경영계획을 수립했다. 조 이코노미스트는 “지금부터 한 두 달 안에 원화값이 1050원선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 이후 원화값의 흐름은 국제 금융시장 상황과 국내 경제환경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정유업계가 기름값을 3개월 시한으로 내리겠다고 결정한 것도 환율의 움직임에 따라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한편 5일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대비 원화값은 전날보다 1.40원 내린 1088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신창훈 기자 @1chun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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