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가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ℓ당 100원 내렸지만 국제유가 급등으로 그 효과가 조기에 증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석유공사는 지난 6일 국제시장에서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가격이 전날보다 배럴당 1.51달러 오른 115.05달러를 기록했다고 7일 밝혔다. 두바이유 가격은 엿새째 상승하면서 110달러를 넘어 120달러를 향해 가고 있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국제유가와 환율에 따라 움직인다. 환율은 1000원대로 내려왔지만 국제유가 상승 속도가 워낙 빠르다. 환율 하락(원하 가치 하락) 효과가 국내 석유가에 눈에 띌 만큼 반영되길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매기는 잣대인 국제 석유제품 값도 치솟고 있다. 석유공사 석유정보망(페트로넷) 집계 결과 지난 6일 거래된 휘발유(옥탄가 95 기준) 가격은 전날보다 1달러 오른 배럴당 128.02달러를 기록했다. 2008년 7월 22일(130.67달러) 이후 2년 8개월만에 사상 최고치로 올라섰다. 정유사는 생색을 낼대로 다 냈는데 정작 소비자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 벌어질 수도 있다.

정부, 소비자도 유류세 인하와 관련해 비슷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국제유가가 치솟자 정부는 2008년 3월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10% 낮췄다. 기획재정부는 ℓ당 휘발유 82원, 경유 58원, LPG 부탄 17원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야심찬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전망은 전망일 뿐 현실은 달랐다.

유류세를 인하한지 불과 2주만에 경유가격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세금 인하폭이 컸던 휘발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제유가는 물론 환율까지 상승(원화 가치 하락)했던 탓에 정유사, 주유소가 판매가를 빠른 속도로 다시 올라갔다. 당시 휘발유, 경유 유류세 인하분 ℓ당 82원, 58원 가운데 절반인 41원, 27원이 정유사, 주유소 이익으로 흡수됐다는 분석이 지식경제부 현장 조사 결과 나오기도 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현장 점검을 강화했지만 이미 증발해버린 유류세 인하 효과를 되돌릴 순 없었다.

지금 상황도 2008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제유가가 현 속도로 계속 오른다면 정유사의 ℓ당 100원 인하 효과가 빠른 시기에 사라질 수 있다. 정유사, 주유소를 바라보는 의심의 시선도 있다. ℓ당 100원 인하 발표를 전후해 출고가, 판매가를 미리 올려놓고 값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가시지 않는다.

마침 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오피넷)이 집계한 지난 6일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된 보통휘발유 판매가는 전날보다 0.45원 내린 ℓ당 1970.92원이었다. 휘발유 값이 하락한 것은 무려 179일만이다. 정유사 발표대로 휘발유 값 인하 조치가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현숙 기자 @oreilleneuve> newea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