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의 경쟁구조를 도모하려는 서남표식 ‘독종’ 키우기 마인드는 학우 4명을 잃은 뒤 외면당하고 있다. 학계와 시민단체, 정치권도 ‘도그레이스(dog race)’에 내몰린 학생들을 동정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던 ‘경쟁’ 키워드와 한국을 다른 선진국보다 5~10배 빠르게 정상권의 반열에 올려놓은 ‘독종 DNA’가 도전을 받는 듯하다. 선의의 경쟁과 목표를 향한 독종 DNA는 발전과 진보의 에너지라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먼저 독종 DNA가 잘 발현된 경우를 보자.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는 유명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입대하는 날도 잊은 채 밤새워 백신을 개발하고 허겁지겁 군대에 가느라 가족에게 인사도 못했다”고 말해 감동을 전했다.
‘경기고 3대 천재’로 통하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연구하는 중앙은행을 목표로 평소 “사흘 밤낮 술, 담배를 하면 죽게 되겠지만 사흘 밤낮 공부만 하면 죽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올 초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 ‘독종 DNA’를 되찾아 LG전자의 기본을 다시 세울 것”이라고 강조했고,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은 기업 개선 돌입 후 3년간 주말도 없이 직원들과 자장면을 먹으며 열심히 일해 14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올해는 매출 3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선포했다.
독(毒)이 양면성을 지니듯 독종 DNA도 마찬가지다.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은 지난 4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많은 학생들은 명문대학으로 진학해 자신보다 더 나은 학생들과 경쟁하기를 원한다”고 했지만, 제자 4명의 죽음 앞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성패와 생사의 갈림길에는 무엇이 작용했을까.
전문가들은 ‘착한’ 독종 DNA는 경쟁이 발전적으로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율적 경쟁을 강조했다. 신 교수는 “자율적 경쟁은 경쟁의 룰을 선택하든, 최소한 룰을 정하는 데 참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라며 “극소수의 스타에게 보상을 몰아주고 대다수는 패자로 규정하는 한국적 경쟁의 룰은 절망감과 패배의 체험을 대물림하며 갖가지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류정일 기자/ryu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