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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데이>뒤늦게 내민 ‘화해의 손’…51년 상처의 골은 깊었다
故이승만 양아들 이인수씨 4.19 묘역 참배시도 무산…화합 통한‘ 모두의 민주주의’여전히 숙제
51년의 상처는 깊고도 깊었다. ‘그래도 이 정도 세월이면’이라는 기대감은 사정없이 무너졌다.

19일 오전 9시. 서울 수유동 4ㆍ19 국립묘지. 고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80) 박사가 묘역을 찾았다. 묘역은 역사적 화해를 기대했던 시민,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나 기대감은 잠시뿐. 이 박사의 ‘사과 참배’는 4ㆍ19 유가족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4ㆍ19공로자회 등 관련단체는 “진정성 없는 사과는 필요없다. 정치적 쇼는 안 된다”며 이 박사와 사단법인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일행을 막아섰다. 이 박사는 “적어도 사과를 할 기회는 줘야 하지 않나”라며 항변했다.

기념사업회와 4ㆍ19단체 간의 고성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박사는 결국 발길을 돌렸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유족들의 가슴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생채기가 남아 있었다. 

1960년 4월 19일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마산에서 시작된 학생 시위는 대학생 교수, 그리고 시민들에게 퍼져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규탄하는 민주화 혁명이 됐다. 군대가 그들을 가로막았다.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다치거나 사망했다. 혁명의 불길은 더욱 강하게 번져갔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희생자 유족들은 그간 사단법인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측에 꾸준히 사과를 요구해왔다. 이 단체 이사를 맡고 있는 이인수 박사는 17일 “정부의 잘못으로 희생된 학생들과 유족에게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하면서 당시 잘못을 반면교사로 삼아 앞으로 4ㆍ19 유족회 등 관련 단체와 힘을 모아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며 처음으로 공식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유족과 4ㆍ19 관련단체는“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설립 등을 추진하다가 여론이 좋지 않자 뒤늦게 사과를 하려는 것”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결국 기대를 모았던 반세기 만의 역사적 화해는 이뤄지지 못했다.

4ㆍ19 국립묘지를 찾은 시민들은 서로가 진정성을 갖고 상처를 보듬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강기태(75) 씨는 “이 전 대통령의 업적도 인정해야 하지만 우선은 진심을 다한 사과와 화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4ㆍ19혁명에 나섰던 학생과 시민, 그들이 진정 바랐던 것은 화합을 통한 민주주의였다. 이제는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얽힌 갈등의 실타래를 풀어가야 할 때가 아닌지.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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