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존속살해 규정을 삭제하는 형법 개정시안을 마련했다는 사실이 19일 알려지자 패륜범죄와 평등권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당장 성균관은 유구한 전통과 도덕성을 훼손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으며, 학계에서는 위헌론과 합헌론이 대립하고 있다.
▶성균관 “통탄할 일, 문제 삼겠다”
최근덕 성균관장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도덕성을 훼손시키려는 통탄할 일”이라며 “자기를 낳아준 존속은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다. 인륜을 거스른 패륜범죄는 일반범죄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최 관장은 “양형에서 고려할 수 있다지만 존속살해 규정 자체의 예방적, 교육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폐지안이 이대로 유지된다면 성균관 뿐만 아니라 종교계 차원에서 문제 삼을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존속살해 조항은 1953년 형법을 제정할 때부터 있었으나 그 동안 학계에서는 합헌론과 위헌론이 혼재했다.
특히 1995년 형법개정 전에는 존속살해가 사형 및 무기징역으로만 처벌하게 돼있어 부모 학대 등 참작 사유가 있더라도 중형이 불가피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형법 개정 때 존속상해, 존속폭행 등에 벌금형을 둬 형의하한을 낮추고 존속살해에도 7년 이상의 유기징역 선고가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당시에도 ‘존속 살해를 무겁게 처벌하는 것은 이미 우리 전통이 된 법률문화이고 가중 처벌은 비속의 패륜성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위헌이냐? 합헌이냐?...법학계도 ‘팽팽’
법학계에서는 평등권 위반이라는 견해와 전통문화를고려할 때 합리적 근거가 있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위헌 주장을 펴는 학자들은 인간은 ‘자손을 낳을 자유’는 있지만 ‘출생하는 자유’는 없는데 직계비속이라는 신분 때문에 다른 범죄자보다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은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 오늘날 가족관계는 개인 대 개인의 평등관계로 봐야 하는데 존속범죄에만 가중처벌을 하는 것은 봉건적 가족제도를 전제로 해 전근대적이라고 주장한다. 법과 도덕은 구별돼야 하며 효라는 도덕 가치로 법 앞에 불평등을 둘 수는 없다는 논리인 셈이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비속살인을 가중 처벌하지 않으면서 존속살해만 무겁게 처벌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반면, 합헌론자들은 존속살해죄는 통상 살인에 비해 반윤리성의 정도가 크기때문에 무겁게 처벌하더라도 평등 원칙에 어긋나지 않고, 자손을 사회적 신분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2년 “존속상해치사는 인륜에 반하는 행위로 그 패륜성이 사회적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고, 엄벌하는 것은 우리 윤리관에 비춰 아직은 합리적”라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한 바 있다.
▶외국은...?
다른 나라의 법 적용을 참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대다수 국가는 존속살인을 따로 두지 않는 게 일반적이고 일반 살인죄로도 죄질에 따라 사형이나 무기징역 등으로 무겁게 처벌할 수 있는데 굳이 별도의 규정을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등 영미법계 국가는 예전부터 존속 대상 범죄를 가중 처벌하지 않았고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등은 존속뿐 아니라 비속이나 배우자를 살해했을 때 가중 처벌하는 규정을 함께 두고 있다.
독일, 헝가리 등은 존속살해 규정을 두고 있다가 삭제했다. 또 일본은 존속살해 외에도 존속상해치사, 존속유기 등 우리 형법과 같이 존속 가중처벌 규정을 많이 두고 있었으나 1973년 최고재판소에서 위헌 결정한 이후 1995년가중처벌 규정을 모두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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