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도급 직원들을 원청업체 정규직으로 일제히 전환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내하도급의 정규직화가 한꺼번에 이뤄지면 첫 해에만 국내 산업계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5조원을 웃돌고, 그로 인해 고용이 심각하게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명분에 집착해 원청업체 생산라인에서 2년 이상 근무한 모든 사내하도급 직원을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하게 되면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사내하도급 정규직화 이뤄지면 일자리 11만개 증발=한국경제연구원이 이달 13일 내놓은 ‘사내하도급 근로자 직접고용의 경제적 비용과 영향’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하도급 근로자를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으로 전환할 경우 산업계가 떠안아야 할 추가비용이 첫 해에만 최소 5조4169억원에 달한다.
현금급여 증가액이 3조312억원이며 성과급ㆍ일시금 증가액이 9465억원으로, 둘을 더한 직접노동비용 증가액만 전체 비용 증가액의 73.4%를 차지한다. 여기에 법정퇴직금과 국민연금 등 간접 및 기타노동비용을 추가하면 5조4000억원을 웃도는 추가비용이 한꺼번에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사내하도급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절약되는 비용을 원청업체인 대기업이 고스란히 사람을 채용하는 데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사내하도급 직원의 원청업체 정규직화가 동시에 진행되면 11만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가 사라지고 실제로도 대기업의 신규 채용은 크게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노동계의 원청업체 직접고용 주장이 현실화되면 우리나라 노동유연성이 악화되고 노동비용이 급증하게 돼 전체 노동수요 감소로 이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기득권 보호로 다수 피해자 양산 우려=작년 연말 현대자동차 사내하도급 직원들이 현대차의 직접고용을 주장하며 울산공장 라인을 점거하고 파업을 벌이면서 지난 10여년 동안 첨예한 이슈였던 사내하도급 문제가 본격 제기됐다. 사내하도급 직원으로 2년 이상 근무한 경우 대기업이 직접고용하라는 대법원 판결 직후였다.
당시만 해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 동안 같은 일을 하고도 통상임금 수준이 현대차 정규직의 84%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사내하도급 직원들의 주장에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여론은 변하고 있다. 사내하도급이 아닌 1차 부품협력사 직원의 임금수준이 현대차 정규직 통상임금의 76%, 2차 부품협력사 직원의 임금수준은 65%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로 인해 사내하도급 직원들이 현대차 정규직에 비해서는 임금을 덜 받지만 전체 자동차 업계 내에서는 급여수준이 결코 낮은 게 아니라는 인식이 퍼졌다.
이와 함께 사내하도급의 원청업체 정규직 전환이 현실화되면 당장 요건을 갖춘 이들만 혜택을 볼 뿐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층은 물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내하도급 직원들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새롭게 부각됐다. 정규직원이 급작스레 늘면 대기업이 굳이 사내하도급을 활용할 이유가 없어져 적지 않은 사내하도급 업체들이 안정적인 거래선을 잃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 역시 사내하도급 이슈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사내하도급 문제는 단순한 듯하지만 복잡하게 얽혀있어 특정 기업이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면서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이슈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등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충희 기자 @hamlet1007>
hamlet@heraldcorp.com
<사진설명>
2년 이상 원청업체 생산현장에서 근무한 사내하도급 직원 중 요건이 해당되는 이들을 한꺼번에 원청업체가 직접고용하면 오히려 국가 전체적으로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헤럴드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