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솔방울·나무껍질로 불길 역추적
가해자 대부분 시골노인 너무 안타까워
“산불도 현장에 답이 있다. 검게 탄 솔방울ㆍ나무껍질 하나가 불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말해준다.”지난 3월 초 산림청은 전문가 167명으로 구성된 산불전문조사반을 출범시켰다. 산림청 공무원은 물론 대학교수, 전직 경찰관ㆍ소방공무원 등이 총 망라된 드림팀이 구성됐다. 네티즌들은 인기 미국 드라마 ‘C.S.I’(과학수사로 범인을 잡아내는 내용)의 제목을 본따 이들을 ‘산불 CSI’라고 지칭했다.
활동 50여일. 산불CSI는 구성 초기임에도 기대에 걸맞은 성과를 거둬내고 있다. 울산, 예천, 안동 등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산불의 ‘가해자(범인)’를 잇달아 찾아냈다. 평소 30%를 밑돌던 검거율도 5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산불 CSI’의 반장격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이현복 산림청 산불방지 과장이다. 170명에 달하는 조사반을 이끌면서 수사를 지휘하고 관련 부처나 지자체와 커뮤니케이션을 맡고 있다.
이 과장은 “우리나라 산불은 거의 전부가 인재다. 특히 봄산불은 불꽃이 보이지 않는 ‘도깨비 산불’이다. 하지만 옛날과 달리 우리 조사반이 첨단장비와 기술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조사를 하다 보면 과학적인 증거가 나온다. 그 증거를 들이대면 가해자들이 피해갈 수가 없다”고 자신한다. 산불 가해자 검거의 핵심은 최초 발화점을 찾는 것이다. 첨단 장비도 구비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조사원들의 경험과 관찰력이다. “타다만 솔방울, 풀이 탄 모양, 병ㆍ깡통이 그을린 모양 등 모든 게 증거다. 나무껍질 같은 것은 불이 온 방향 쪽이 더 많이 탄다. 그런 걸 보고 불길을 역추적해간다.”
현장에 투입된 조사반들은 불의 움직임에 따라 깃발을 꽂는다. 불이 전진했으면 빨강 깃발을, 좌우로 움직였으면 황색을, 뒤로 움직였으면 파랑 깃발이 꽂아진다. 몇십 명의 조사반들이 그렇게 깃발을 꽂으며 불길을 역추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세 가지색의 깃발이 한꺼번에 꽂히게 되는 장소가 있다. 하얀 깃발이 꽂히는 곳, 바로 발화점이다. 발화점 주변을 정밀 탐색해 보면 담배꽁초나 성냥개비, 휘발유의 흔적 등 증거가 나온다. 발화점 주변에는 대부분 묘지나 밭, 무속인의 기도터 등 사람의 흔적이 있다. 결국 이 사람들이 산불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가해자를 잡고 보면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 대부분은 시골에 사시는 어르신들이다. 이 과장은 “법적으로 산림 100m 이내에 논밭은 함부로 소각하면 안된다. 신고하시면 전문요원들이 직접 출동해서 소각도 다 해드린다. 어르신들이 가해자로 몰려 징역을 살거나 벌금을 내야 될 때 보면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는 “해외에서는 산불로 인한 법률분쟁도 많다. 산불 조사반들의 증거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할 일도 점점 많아질 것”이라면서도 “제일 좋은 건 산불이 안 나서 우리 조사반이 없어지는 거 아니겠는가”라고 웃으며 말했다. 홍승완 기자/sw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