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에 따르면 현재 서초구 구립 어린이집의 정원은 2050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입소를 기다리고 있는 영유아 수는 2만5000여명에 달한다. 정원의 10배가 훌쩍 넘는 수준이다. 구립 어린이집보다 들어가기 쉬운 민간 어린이집 정원은 2400여명인데 대기자수는 9200여명에 달한다.
상황이 이런데 지난 2004년 전면 개정된 영유아보육법과 시행규칙의 보육시설 설치기준이 개정 전보다 지나치게 강화돼 어린이들이 보육시설에 입소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개정 전에는 보육실을 1층뿐만이 아니라 2층 이상에도 안전사고 대비 시설을 갖췄을 경우 설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정 후부터는 보육실을 1층에만 설치해야 하고 전체 건물을 보육시설로 쓸 경우만 2~3층까지 보육실을 설치할 수 있게 됐다. 이 밖에 놀이터 설치기준, 조리실 설치기준이 모두 개정 후 까다롭게 변했다.
개정된 영유아보육법과 시행규칙의 유예기간이 지난해 1월 만료됨에 따라 보육시설은 개정 규정 및 지침에 맞게 모두 시설을 개ㆍ보수해야 했다. 4층 이상의 보육실은 폐쇄해야 하고, 지하 조리실을 지상으로 옮겨야 해 보육실 공간은 더 줄어들었다.
진익철(오른쪽) 서초구청장이 보육 문제 해결을 위해 부서장회의를 열어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
서초구는 2만여명이 넘는 어린이집 대기자들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이같이 강화된 규정을 적용한다는 것은 정책과 현실이 괴리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장 시설 개ㆍ보수에 들어가면 그나마 부족한 보육시설의 태부족 현상이 초래될 게 뻔했다.
‘법규제 일변도로 일관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반영했다.
서초구는 지난해 11월 서초구청 인터넷 홈페이지 ‘구청장에게 바란다’를 통해 영유아 보육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주민 건의사항을 모았다. 이를 바탕으로 현장 방문, 관련 부서장 회의를 잇따라 개최한 서초구청장은 영유아보육법 관련 규정 개정을 요구하기로 결론냈다.
서초구는 1층에만 설치해야 하는 보육실뿐 아니라, 놀이터 설치기준, 조리실 설치기준을 현실화해 달라고 복지부를 찾아갔다.
건물 전체를 보육시설로 사용하는 경우 2층과 3층에도 보육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는 개정 사항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건물 전체를 보육시설로 사용하든 아니든 2층과 3층에 보육실을 설치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안전문제는 다를 바 없는데 왜 다른 규제를 하느냐는 것이다.
논의 결과, 전과 같이 안전 시설을 갖추면 2층 이상에 보육시설을 설치하고, 조리실도 지하에 존치하게 됐다. 또 80% 이상 지상으로 노출돼야 1층으로 인정하던 규정을 50%만 지상으로 노출되면 1층으로 인정해 반지하층에도 보육실을 지을 수 있게 됐다. 보육전용건물 2~3층까지만 가능하던 보육실 설치도 5층까지 확대됐다. 이 같은 개정 지침은 이달부터 시행됐다.
진익철 서초구청장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피부에 와닿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 및 지침에 대해 시민의 의견을 모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수한 기자 @soohank2> soo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