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지원 저신용자까지 확대
올 상반기 40여곳 42억 지원
벤처 3곳도 패자부활제로 새빛
#1부산 소재 A사 B사장은 요즈음 멸치뼈 추출 칼슘제품 연구에 빠져 있다. 영업악화로 2008년 5월 폐업 후 틈틈이 재기를 노리다 지난해 ‘재창업지원제도’를 운영하는 기관의 문을 두드려 기술성을 인정받고 1억원의 운영자금까지 1차로 지원을 받았다. 이 자금을 기반으로 일반 칼슘제와 어린이용 칼슘제를 추가로 개발하고 원자재 구입, 제품 광고에 활용해 3개월 만에 3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재 일본 수출도 진행 중이다.
#2구강용품 제조업체인 ‘비스’의 김성수(39) 대표는 최근 들어 중국, 베트남 수출 건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는 2004년 12월 경영하던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채무까지 떠안아 ‘신용불량자’가 됐다. 대리운전 고객관계관리(CRM) 솔루션을 개발해 전국에 납품했으나 대형 경쟁사의 출현과 덤핑공세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던 중 최근 1차로 7000만원의 재기지원금을 융자받아 성공적인 재기 스토리를 쓰고 있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자금 융통은 물론 재취업도 못해 우리 사회 밑바닥을 전전하던 실패 중소기업인들이 차츰 시장으로 돌아오고 있다. ‘벤처패자부활제’에 이어 지난해 마련된 실패 기업인 ‘재창업지원제도’가 지원 대상과 요건을 완화한 데 따른 효과다.
재창업 제도 등을 통해 재기에 나서고 있는 중소기업 수는 지난해 15개. 올 들어서는 이달 19일까지 23개로 지금까지 모두 38개에 이른다. 패자부활제를 통과해 정상화를 추진 중인 벤처기업 3개를 포함하면 총 41개다.
지원액도 지난해 15억원에서 올해 5월까지 23곳 21억원에 달했다. 상반기 승인액도 21억원에 달해 재기심사를 통과하는 기업은 올 상반기에만 40곳을 웃돌 전망이다.
중기청과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지원하는 재창업지원제도는 기존 제도가 ‘신불자’ 또는 ‘폐업 후 10년 이내인 자’만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것을 올 들어 ‘저신용자’(7등급 이하)로 늘리고 폐업기간을 폐지했다. 동시에 수혜자에 부과하던 가산금리(1%포인트)도 없앴다.
이 제도는 재기 기업인의 재창업에 소요되는 시설 및 운전자금을 연간 최고 30억원(운전자금 5억원)까지 융자해준다. 시설자금 상환은 8년 이내(거치기간 3년), 운전자금은 5년 이내(거치기간 2년) 기간을 뒀다.
벤처기업협회도 2004년부터 실시해 온 벤처패자부활제(벤처기업경영재기지원제도)를 통해 지난해 말까지 3개 기업의 재기를 승인했다. 협회는 기술신보의 사업성 평가와 함께 법무ㆍ회계법인의 도덕성 평가를 거친 기업에 대해 내부 재기추진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지원기업을 선정하고 있다. 패자부활제 대상으로 선정되면 기보의 보증과 함께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기존 채무 대한 상환 연장과 일부 탕감을 받게 된다.
이처럼 실패자들이 산업계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반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정부도 지난해 벤처활성화대책 이후 올해 관련 예산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문제점이 없지는 않다. 재기 기업인들은 신용장(LC)을 받아도 제도금융권에서 자금을 융통할 수 없어 소요자금이 더 많으나 지원액은 적고 또 심사와 집행까지 2, 3개월씩 소요돼 운영비용 낭비 등의 애로를 호소한다.
한 재기기업인은 “우리는 일반 창업기업과 달리 기업을 운영했던 경험이 많아 매출을 일으키는 속도가 빠르고 경영정상화도 빠르다. 그러나 금융이나 제도 이용 시 창업기업보다 훨씬 장벽이 높다”며 “실패 자산에 대한 후원 차원에서라도 일반기업과 같은 수준의 대우가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중진공 융자사업처 김현태 처장은 이에 대해 “형평성 문제도 있고, 신용리스크가 높기에 처음부터 많은 지원은 어렵다”면서 “실적이 나오면 그에 맞춰 자금을 추가로 늘려가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패자에 대해 가혹한 문화와 함께 세금낭비라는 사회적 눈총도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최근 들어선 외환위기 때와 달리 ‘실패도 학습의 일부’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으나 사회 저변에는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있다.
이민화 카이스트 석좌교수는 “벤처 또는 창업이란 실패의 과정이며 실패를 통한 학습으로 성장과 혁신이 가능하다”며 “경계(보신주의)를 위한 실패는 용납해선 안 되지만 도전을 위한 실패는 과감히 지원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공청소기로 유명한 영국 다이슨 사의 제임스 다이슨 회장도 “진공청소기를 출시하기까지 5년간 5127개의 시제품을 만들었다. 완성품 이전 5126개는 모두 실패였다”며 “나는 실패를 사랑하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조문술 기자/freihei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