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장에서 근무하는 캐디 W 씨(41)는 20년 가까운 경력의 베테랑이다. 클럽 내에서 가장 실력도 뛰어나고, 350명 캐디의 상조회장을 맡고 있을 만큼 성실하고 선후배의 신뢰도 두텁다. 그러나 요즘 그의 얼굴에 그늘이 비치는 날이 많아졌다. 5시간 남짓한 라운드를 마치면 고객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한숨을 내쉬기 일쑤다.
두 달 전 지식경제부가 내린 야간점등 제한조치로 인해 야간골프가 중지되면서부터다. W 씨는 결혼도 미룬 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다. 하루 두 타임을 뛰어야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조명탑을 켜지 못하게 되면서 라운드배정이 절반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퍼블릭 골프장에 근무하는 캐디들에게 3월은, 일감이 없는 겨울을 허리띠 졸라매고 아껴쓰며 버티다 맞이하는 봄날이다. 야간골프가 시작되면서 일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3월부터 시작된 점등 제한조치로 인해 여전히 동토의 한가운데서 찬바람을 맞고있다. ‘열심히 벌어서 빚도 갚고 생활에 숨통도 터야지‘했던 이들에게 날벼락이 내린 것이다.
지식경제부는 유가가 100달러 이하로 5일간 지속될 때까지 백화점, 대형마트 등 대형업소, 유흥업소, 골프장, 대기업의 옥외조명 등의 야간조명의 점등제한을 강제한다는 ‘에너지 위기 주의 경보’를 2월27일 발령했다. 하지만 경제난이나, 전력난, 유가폭등 등의 이슈만 터지면 동네북 신세가 되는 골프장의 경우, ‘탁상행정‘, 전시행정’의 대표적인 희생양이라는 지적이 높다.
‘골프 못치게했다’는 전시효과 때문에, 골프는 안치면 그만이라는 편의적인 발상때문에 골프장에서 일감을 얻어 먹고사는 많은 서민들의 삶은 황폐화되고 있다. 월급쟁이 골퍼들이 주로 라운드하는 퍼블릭코스는 타격이 크지만, 고위 공직자들이나 대기업 임원들이 이용하는 회원제 골프장은 야간골프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다.
관료들에게 골프는 안해도 되는 ‘레져’다.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골프장 근로자들에게는 처절한 ‘생존’이다. 다시 불이 켜질때까지 피눈물을 흘리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16만원 아끼려고 수 천명이 일자리를 잃어야하는 점등제한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김성진기자withyj2@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