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부자(富者)를 꿈꾼다. 그러나 꿈을 꾸는 것으로만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부자가 되기로 꿈을 먹었다면 일단 부자들이 누구인지 살펴보는 게 첫번째다. 조 단위의 천문학적인 돈을 모은 세계 최고의 갑부들은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를 살표보고 따라 해보는 것이 그 다음이다. 영국 더 타임스의 일요판인 선데이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부자들 3명은 어떻게 어마어마한 돈을 모았는지, ‘스마트한 부자 되기 비법’을 알아보자.
▶샘 월튼, 단순한 원칙만 있으면 된다=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은 ‘아메리칸 드림’의 대명사로 꼽힌다. 대공황기 시기 월튼은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소젖을 짜서 팔던 가난한 소년이었다. 군 제대 후 장인에게 빌린 종잣돈으로 소매점을 열어 점포를 확장해나간 그는 세계 최고 부자 반열까지 올랐다. 부(富)를 늘려나간 그의 원칙은 단순했다. 박리다매와 끊임없는 투자 그리고 직원들에 대한 동기 부여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일을 도왔던 월튼은 후에 “나는 아이들도 그저 돈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가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배웠다. 1달러를 벌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해야 하는지 10살이 되기 전에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 월튼은 신문배달, 잡지 판촉, 웨이터, 구조요원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1년에 4000달러 이상 수입을 올렸다.
제대 후 월튼은 그간 모은 돈 5000달러와 장인에게 빌린 2만달러로 아칸소 뉴포트에서 벤프랭클린 잡화점을 열었다. 매출은 크게 늘었지만 토지 임대 문제로 가게를 접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새로운 소매상점을 열고 꾸준히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한 상점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다른 상점을 내는 방식이었다. 특히 월튼은 직원들이 새로운 매장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이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했고 이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시켰다.
블룸버그통신은 월튼에 대해 “막대한 규모와 효율성을 바탕으로 박리다매라는 단순한 원칙만으로 성공을 거뒀다”고 밝혔다.
그는 성공을 위한 10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자신의 사업에 전념하라’, ‘성공을 자축하라’, ‘고객의 기대를 넘어서라’는 조언과 함께 마지막으로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주커버그, 상상력이 돈이다=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 1984년생. 한국나이로 28세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젊은이가 무려 90억 파운드, 한화로 환산하면 16조원에 달하는 재산을 모았다.
‘페이스북’(FaceBook)이라는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통해 마크 저커버그가 창업한 페이스북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과연 28세, 얼굴에 죽은 깨 투성인 마크 주커버그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큰 돈을 벌 수 있었을까.
마크 주커버그의 돈벌기 시작은 정말 사소했다.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화가 나 여자친구의 소소한 일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떠들기 시작한다. 여기에 하버드대 여학생들의 모든 신상자료를 해킹한 뒤 ‘페이스 매시’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하버드대 내 미모 대항전까지 펼친다.
‘천재’적일 수 있지만, 다소 엉뚱하고, 괴퍅하다.그리고 그는 이 아이디어를 확장했고, 친구에게 빌린 1만 8000달러(약 2000여만원)를 종잣돈으로 원조 페이스북을 만들게 된다.마크 주커버그는 ‘상상력’을 확대, 발전시키는 능력이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바로 그 상상력이 현재 16조원에 달하는 재산을 갖게 한 원천이었다.
그의 상상력의 원천은 ‘인문학’과 ‘고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그리스 신화 등을 줄줄 외고 다닌 것으로 전해진다.사소한 일상에서 좀 더 큰 생각을, 그리고 그걸 무한 확장하는 능력을 갖췄다.
돈도 중요하지만, 그에게는 돈 이상의 가치,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창업 후 2년 만에 1조원에 팔라는 제안도 웃으며 거절할 수 있었다.
여기에 그는 ‘내려놓는 법’도 안다. 돈을 버는데 급급하지 않고 자신의 재산을 세상에 기부하겠다는 것이다.
세상을 밝게 만들겠다는 욕심은 있지만, 돈에 대해서는 큰 욕심이 없는 그.그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다.
▶리카싱, 위기가 기회다=아시아 최고 갑부 리카싱(李嘉誠) 청쿵실업 회장의 별명은 ‘홍콩 슈퍼맨’이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대담함과 16시간 이상 일하는 성실함을 바탕으로 그는 55개국 26만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부자가 됐다.
중국 광둥성 차오저우(潮州)에서 가난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제의 침략을 피해 홍콩으로 건너왔다. 홍콩으로 피난 온지 1년여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등 고난을 겪게 된다. 리카싱은 15세 때부터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학교 대신 플라스틱 공장에서 하루 16시간씩 쉬지 않고 일했다.
그는 1950년 불과 22살의 나이에 플라스틱 제조회사 청쿵을 세워 사업을 불려나갔다. 특히 1967년 홍콩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당시 땅값이 폭락하자 낮은 가격에 이를 매입, 크게 성공을 거뒀다. 사회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그는 부동산 뿐만 아니라 건설, 은행, 플라스틱, 휴대폰, 호텔에 이르는 비즈니스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리커싱은 막대한 부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리 비싸지 않은 세이코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는 등 소박한 삶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선단체에 14억달러를 기부하는 등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지난해 반관영 통신사 중궈르바오(中國日報)가 실시한 중국 500대 기업인의 이미지 만족도 조사에서 리카싱 회장은 1위를 차지했다.
허연회.신수정 기자/okidok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