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이 구매하는 제품은 중소기업끼리만 경쟁해서 조달 계약하도록 하는 제도가 이미 있는데, 여기에 적합업종ㆍ품목까지 얹어주면 너무 심한 대기업 역차별 아닙니까.”
“대기업들은 늘 중소기업이 수 십년간 애써 만들어온 시장에 들어와 인수합병으로 순식간에 덩치를 키워버립니다. 늘 그런 식으로 중소기업들은 자신이 만든 시장에서 밀려났어요.”
9일 산업계에 따르면, 동반성장위원회의 적합업종ㆍ품목 최종 선정이 2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대ㆍ중소기업간 장외대결이 한창이다. 이는 동반위 내부에서도 그대로 재현되는 분위기다. 바로 대ㆍ중소기업 실무위원간 의견 대립이다.
중소기업 판로 지원을 위해 지난 2007년 도입한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에 대한 시비가 다시 일고 있다. 2012년까지 효력을 갖는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은 레미콘, 사무가구, 된장, 정수기(가정용 제외) 등 현재 총 196개에 달한다. 특히, 레미콘은 관련 대ㆍ중소기업간 행정소송으로 번져 조달공고마저 취소된 상태다.
대기업들은 이처럼 이미 중소기업 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있는데 적합업종ㆍ품목마저 선정되면 둘 다 해당하는 품목은 이중 보호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특히 대ㆍ중기 쟁점 품목으로 꼽히는 된장, 고추장 등이 여기에 해당돼, 만일 8월 말께 적합품목으로 선정되면 해당 대기업들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법은 이를 “중소기업자간 제한경쟁 또는 중소기업자 중 지명경쟁 입찰에 의해 조달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제품”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대기업을 배제하고 중소기업끼리만 경쟁을 통해 공공기관 납품 계약을 체결한다는 의미다.
이는 2007년 시작돼 매년 경쟁제품 목록을 갱신하다 2009년부터 3년 단위로 지정하고 있다. 이에 2009년 지정된 제품은 2012년 12월 31일까지 효력을 갖는다. 효력이 소멸되는 시기와 동시에 다시 경쟁제품을 지정, 3년 간 효력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한 식품 대기업 관계자는 “공공조달 시장 전부를 중소기업에 내준 상황에서 민간시장까지 통제하려는 것은 시장경제 원칙에 완전히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대형 가구업체 관계자도 “공공조달은 출입문 자체가 막혀 있어 포기한 상태지만 호텔이나 공동주택 등 독자적으로 개척한 시장까지 막아버린다면 회사를 쪼개서라도 중소기업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기업이 신성장동력이란 미명 아래 중소기업 영역까지 무차별 침범하는 사례는 선진국 어디에도 없다. 적합업종은 그런 의미에서 일정기간만 보호막을 쳐두자는 의미”라고 반박했다.
적합업종 주무기관인 동반위와 중소기업청은 이와 관련, ‘절차’만을 강조하고 있다. 동반위는 “연구기관 선정하고 실태 조사하는 과정과 함께 향후 중기간 경쟁제품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는 절차가 있다”고 설명했다. 중기청 측은 “정부는 적합업종ㆍ품목 선정 후 경쟁력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주어진 역할이어서 선정 후 논의해 볼 문제”라고 한발 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지난 8일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1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에서 “적합업종이 강제성은 없지만 사회적 압력에 따라 자율조정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특히 “행정부처와 연계해 적합업종을 제도화, 법적 근거를 든든히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동반성장은 일종의 ‘시대정신’이며, 이 정권이 끝나 이름은 바뀌더라도 그 기능은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태일 기자@ndisbe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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